서민지원 떠넘기고 생색내는 정부..."규제가 미래금융 최대 걸림돌"

[리빌딩 파이낸스 2021]
'컨버전스'로 미래금융 그려라
<1> 자율 경영에 목마른 금융권
금융CEO 설문서 ICT·유통 대기업 진출도 불안요소 지적
양대 금융수장에 '빅테크와 규제 형평성' 요구도 70%
짧은 CEO 임기·강성 노조 불안감 등은 예전보다 줄어



국내 금융기관의 대부분은 민간 자본이 대주주다. 하지만 금융 당국의 규제와 감시·간섭 등은 경제개발 시대처럼 관치 금융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은 한목소리로 ‘자율 경영’을 최대한 보장해줄 것을 강조했다. 금융사도 환경 급변에 따라 다각도의 생존 방안과 변화를 시도하는 만큼 세계적인 금융기관이 나올 수 있도록 낡은 규제는 걷어내고 마음껏 능력을 펼쳐 보일 수 있기를 희망했다.




서울경제가 금융사의 CEO 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기존 금융권과 빅테크를 막론하고 ‘기성 금융사의 미래 금융 대비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76.3%가 ‘산업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의 과도한 규제’라고 응답했다. 당국과 정치권의 경영 개입을 걸림돌로 꼽은 답변도 31.6%에 달했다. ‘관치 금융’을 넘어 ‘정치 금융’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다.


지난해 주요 금융지주사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도 실적 증가를 이뤄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익에 따른 배당 증가를 기대했지만 금융 당국의 자제 요청이 이어졌고 금융권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요구했던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 대한 원금·대출이자 상환 유예를 계속해서 받아들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부담을 시중은행이 떠안았지만 생색은 정부가 내고 있는 상황이다. 올 초 여당은 임차인들에게 임대료를 깎아주거나 나중에 받으라는 ‘착한 임대인’ 운동을 제안했다. 금융권도 예외는 아니었고 앞다퉈 동참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리스크와 손해는 고스란히 금융사와 금융사에 투자한 주주들의 몫으로 돌아왔다.


재난으로 소득이 줄어들면 은행이 채무 감면을 해주라는 법안을 발의하거나 여당 대표가 금융지주 회장들에게 예대 금리 차가 크다고 압박하는 것은 사실상 금융사를 정부의 곳간처럼 이용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설문에 응답한 은행장들은 혁신을 통한 비용 절감과 수익 증대 등의 노력은 간과한 채 금융권이 이익을 내면 ‘이자 놀이’라는 프레임으로 이익 공유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환경 변화와 이에 대한 대응을 미래 불안 요소라고 지적한 응답도 적지 않았다. 기존 금융사는 미래 걸림돌로 ‘정보통신기술(ICT)·유통 대기업의 금융권 진출(52.6%)’과 ‘내부 혁신 역량 부족(34.2%)’을 꼽았다. 양대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카카오는 이제 명실상부한 금융 그룹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막강한 계열사를 활용, 금융의 영역을 확대해 전통 금융권을 위협하고 있고 결제를 위해 금융 기능을 결합하는 유통 대기업도 잠재적 경쟁자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 인력만으로 아직까지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금융권은 외부 인재 수혈에 나설 수밖에 없다.


짧은 CEO의 임기나 강성 노조에 대한 불안감은 전보다 많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 성과주의’와 ‘혁신에 비협조적인 노조’를 미래 걸림돌이라고 답한 비율은 18.4%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최근 금융권에는 매년 성과를 보고 1년씩 늘리던 CEO 임기를 2년씩 연장하거나 연임을 이어가 4~5년씩 수장을 맡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전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영에 나서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아울러 노조 역시 ‘투쟁’ ‘이념’보다는 ‘실리’를 강조하며 사측과 상생하고 주주가치를 높이는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MZ세대의 현실감과 금융권의 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노조의 변화를 이끌었다는 지적이다.


빅테크·핀테크와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지만 신산업 육성에 치우치다 보니 기존 금융권의 불만도 적지 않다. ‘금융 당국이 전통 금융사와 빅테크(핀테크)에 공정한 규제를 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부정적인 응답이 65.8%에 달했다. ‘불공정’이라는 답변이 47.4%였고 ‘매우 불공정’이라고 답한 경우도 18.4%나 됐다. ‘보통’이라는 26.3%를 제외하면 ‘공정’ 또는 ‘매우 공정’이라는 응답자는 10%에도 못 미쳤다.


최근 교체된 양대 금융 당국 수장에게 요구하는 것도 명확했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무대를 만들어주고 불필요한 간섭은 삼가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새 금융 수장에게 바라는 것’을 묻자 10명 중 7명이 ‘빅테크와의 규제 형평성’을 들었다. 앞선 질문에 공정하지 않은 규제를 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과 거의 일치했다. 이어 ‘수수료나 금리 등 개입 중단’을 47.4%, ‘정치권의 금융 개입 차단’을 23.7%가 선택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수수료·금리 등은 시장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며 “민간 금융사의 경영권을 최대한 보장해달라”고 강조했다. 예전과 같은 관피아의 낙하산 인사 논란은 줄었지만 ‘지배 구조와 인사 개입 근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7.9%로 나타났다.


지난 6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동참을 유도하지 말라(7.9%)는 소수 응답도 나왔다. 정부 주도로 조성된 K뉴딜펀드에 5대 금융지주가 지원하겠다고 밝힌 규모만 70조 원이다. 국가의 복지 재원을 사실상 민간에서 끌어다 쓰는 이 같은 정책은 과거 정권에서도 매번 시행됐고 비판 역시 끊이지 않았으나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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