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패럴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금메달이 '효자종목' 탁구에서 나왔다. 게다가 은, 동메달까지 싹쓸이하며 도쿄 하늘에 태극기 세 개가 나란히 펄럭이는 장관이 연출됐다.
한국 남자 탁구 대표팀의 주영대(48·경남장애인체육회)와 김현욱(26·울산장애인체육회), 남기원(55·광주시청)이 남자 개인 단식(스포츠등급 TT1)에서 각각 금·은·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주영대는 30일 일본 도쿄 메트로폴리탄 체육관에서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 남자 탁구 단식(TT1) 결승에서 김현욱을 세트스코어 3-1(11-8 13-11 2-11 12-10)로 꺾고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획득했다.
주영대는 지난 대회인 2016 리우 페럴림픽에서 탁구 은메달리스트로 5년 만에 금메달의 꿈을 이뤘다. 또 이번 대회 대한민국 첫 금메달의 주인공도 됐다.
주영대와 김현욱은 이미 이 등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맏형' 남기원(55·세계랭킹 3위)이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금메달을 향해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TT1 체급을 담당하는 대표팀 김민 코치는 주영대와 같은 경남장애인체육회 소속으로 공정한 승부를 위해 아예 경기장에 들어오지 않고 경기장 밖 TV를 통해 중계를 지켜봤다.
1세트에서 주영대가 8-4로 앞서며 기선을 제압했지만 '막내'의 반격이 이어졌다. 김현욱이 잇달아 서브 포인트를 따내며 9-8까지 따라붙자 "좋아!"를 외치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주영대는 날 선 코스와 포핸드 드라이브로 내리 2점을 따내며 11-8로 첫 세트를 따냈다.
2세트에서는 김현욱이 강력한 포핸드 드라이브로 맞섰다. 4-6의 스코어를 7-6으로 뒤집었다. 날카로운 서브, 영리한 네트플레이를 선보이며 10-8로 매치포인트를 잡았다. 하지만 노련미를 뽐낸 주영대가 내리 2점을 따라잡으며 듀스에 돌입했다. 두 선수의 접전 끝에 13-11로 주영대가 2세트를 가져왔다.
3세트에서는 김현욱이 적극적인 공격과 로빙 플레이를 앞세워 11-2로 반격에 성공했다.
4세트도 대접전이었다. 6-6, 7-7, 8-8, 9-9로 팽팽히 맞서다 김현욱이 매치 포인트를 먼저 잡았지만 주영대의 공격이 성공하며 또다시 듀스에 돌입했다. 끝내 웃은 건 세계랭킹 1위 주영대였다. 주영대는 12-10으로 승리하며 세계랭킹 5위 김현욱을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주영대는 어릴 때부터 스포츠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며 체육 교사를 꿈꿨다. 그는 경상대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했으나 1994년 여름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4년간 집 밖에 나오기 힘들 만큼 큰 시련에 빠졌던 그는 PC통신을 통해 '동병상련' 장애인들과 아픔을 나누며 서서히 몸도 마음도 회복해갔다. 이후 컴퓨터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다시 스포츠와 연을 맺게 됐다.
2008년 복지관에서 재활 운동으로 탁구를 시작했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경남장애인탁구협회 사무국장 등 장애인 스포츠 행정가 활동도 시작했다.
은메달리스트 김현욱은 2011년 낙상사고 후 지인의 추천으로 탁구를 만났다. 로빙, 포핸드 드라이브가 장기인 그는 2018년 세계탁구선수권 금메달을 통해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첫 패럴림픽 도전인 도쿄 무대에서 예선부터 4강까지 4경기에서 한 세트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경기력으로 결승에 올라 첫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8일 4강전에서 주영대와 결승 진출을 다퉜던 남기원이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은 TT1 종목 단식 금, 은, 동메달을 싹쓸이했다. TT1은 송신남이 1972년 하이델베르크 패럴림픽에서 남자 단식 첫 금메달을 따낸 이후 한국 장애인 탁구의 대표 종목이자 오랜 자부심으로 통했다.
이번 금메달은 1988년 서울 대회부터 2008년 베이징 대회까지 6회 연속 출전해 개인 단식에서만 금메달 3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따낸 '레전드' 이해곤의 2000년 시드니 대회 금메달 이후 21년 만의 개인 단식 금메달이다.
리우 대회 메달리스트 주영대(은메달)와 남기원(동메달)에 '1995년생 에이스' 김현욱까지 가세하면서 한국은 더 강하고 더 완벽해졌다. 패럴림픽 장애인탁구 한 등급에서 금, 은, 동메달을 싹쓸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