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념에 멍들어가는 부동산 시장

권혁준 건설부동산부 기자


“토지 공개념 실현을 위해서는 토지를 개발·보유·처분하는 단계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환수하는 부동산 세제를 도입해야 한다.”


여권 대선 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강력 추천’한다고 평가한 책의 한 구절이다. ‘공정한 부동산’을 표방한 해당 저서는 부동산 매매에 따른 양도 차익 등을 각종 세금을 통해 ‘0’으로 만들면 주택 등 부동산 가격은 자연스럽게 하락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해당 저서에서는 ‘토지 공개념’의 지속을 위해 이를 지지하는 정권이 오랫동안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수십 년의 ‘장기 집권’을 전제로 한 반시장적 이념이 대권 주자의 사상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이론은 대선 주자들의 공약뿐만 아니라 20여 차례가 넘는 문재인 정부의 규제 속에도 녹아 있다. 종합부동산세부터 취득세까지 각종 세금 강화와 공공택지 추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임대차 3법, 불로소득을 차단하기 위한 여러 규제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으로 집값은 물론 전월세 가격마저 폭등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장 원리를 무시한 정치 이념의 폐해가 명확하게 드러났지만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여당 인사들은 이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집값을 잡겠다”는 이들의 공언은 집 없는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보다 ‘다주택 적폐 투기꾼’들이 ‘불로소득’을 얻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념의 연장선에 가깝다.


맹목적인 이념 추종에 부동산 시장이 멍들어가고 있다. 이러다 평생 내 몸 하나 누일 내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사회 초년생까지 온갖 대출을 끌어모아 주택 매수에 나서는 작금의 현실이 정상적인 시장 상황이라 보긴 어렵다. 규제 강화에 매물은 줄어들고 호가만 오르고 있다. 켜켜이 쌓인 실수요자의 불만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솝우화에 나왔듯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었다. 어린아이도 알 법한 단순한 이치를 외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당·정·청이 자문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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