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만 터지면 '제도 개선하겠다'…전자발찌 연쇄살인으로 다시 시험대에 오른 경찰

'사후 약방문'식 제도 개선의지 밝히지만 정작 뒷짐만져
"왜 인력·예산 없는 우리한테만 일 떠넘기냐" 불만 팽배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훼손 전후로 여성 2명을 잇달아 살해한 혐의를 받는 강모씨가 31일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50대 전과자가 여성 2명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치안당국의 대응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정작 제도개선을 하겠다고 나선 경찰 내부에서는 범죄예방은 우리 업무가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0만 서울 시민의 치안을 관리하는 서울경찰청의 수장인 최관호 청장은 지난 30일 “현장 경찰관이 당일 3번, 다음날 2번, 총 5번 갔지만 주거지 안에 들어가지 못한 데는 법적·제도적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경찰관 직무 집행 범위가 협소한데, 경찰청과 협의해 제도적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이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강씨를 쫓는 과정에서 첫 피해자의 시신이 있던 강씨 집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압수수색 영장이 없어서 집 내부를 수색하지 못했던 것과 관련해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찰 내부에서는 전자발찌 관리·감독은 법무부 소관인 만큼 과도한 비난은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보호관찰관들이 순찰을 도는데 인력이 부족해서 경찰 112에 순찰을 가달라고 하는 상황”이라며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집안에 인기척 정도 밖에 확인할 수 있는 게 없다. 제도 개선 역시 (경찰보다는) 법무부에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범죄자가 전자발찌를 끊고 도망쳤을 때 긴급 압수수색을 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상 '영장주의 예외'를 확대하는 등 경찰관 직무집행과 관련한 제도개선을 모색해야 할 경찰이 전자발찌 착용 출소자 관리는 우리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며 책임 회피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온 국민의 공분을 일으킬 만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제도개선을 하겠다"고 천명한 뒤 뒷짐을 지는 경찰의 행보는 이번만이 아니다. 경찰은 지난 7월 제주에서 "전 내연남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다"며 여러 차례 신변보호 요청을 했던 A씨의 아들이 전 내연남 B로부터 살해된 사건 이후 "피해자에 대한 보복범죄 방지를 위해 현장에서 가해자를 즉시 분리하고 제지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보도자료를 냈지만 현재까지 후속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법적·제도적 개선방안 위해 추진 중인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제도 개선을 통해 또 다른 피해자를 낳지 않겠다는 경찰의 호언장담이 ‘말의 성찬’에 그쳤던 셈이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석좌교수는 “보호관할소에서 모니터링을 할 때 전자발찌를 훼손한 경우에는 그 자체가 범죄이기 때문에 압수수색이든 긴급체포 영장신청 등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전자발찌 업무가 경찰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는 생각보다는 법무부와의 적극적인 공조체제 구축을 통해 사건발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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