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 세계가 결합한 메타버스가 큰 인기를 끌면서 재산권 등 이용자 보호를 위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성희롱을 비롯한 각종 범죄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는 법률 뿐만 아니라 지식재산권(IP) 침해·개인정보보호·‘아바타’의 법적 지위 규정 등 메타버스 생태계에 현실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 지에 대한 전반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메타버스가 앞으로 장기적으로 성장하려면 법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여성가족부는 2일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해 메타버스 관련 제도적·윤리적 대응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메타버스 내에서의 아동·청소년 관련 성범죄 발생 위험과 그에 대한 보호 방안이 주로 논의됐다. 메타버스가 온라인 성착취 범죄 장소로 이동·진화할 수 있고 아바타를 통하는 탓에 심리적 경계가 한층 약화될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 7월 국회입법조사처가 메타버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법제화 필요성을 제기한 데 이어 관련 정부 부처가 움직임에 나선 것이어서 앞으로 구체적인 법제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가부 관계자 역시 “메타버스는 가상현실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활동까지 이뤄진다"며 "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는 만큼 입법 또는 정책적 검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메타버스 전문가들은 범죄 외에도 다양한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특허 등 재산권 침해다. 미국의 경우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가 지난 6월 전미음악출판협회(NMPA) 등 저작권 단체로부터 2억 달러(약 2,32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로블록스에서 음원이 무단으로 재생돼 음원·음반사와 연예인들의 지식재산권이 침해당했다는 이유에서다. 김상균 강원대 교수는 “메타버스를 과거 법령으로 규율할 수밖에 없다 보니 사각지대가 생긴다”며 “불법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아 불확실성이 클 수 밖에 없는데 기업들은 그 리스크를 다 떠안고 사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메타버스 발전 속도를 따라가려면 정부, 입법 기관이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메타버스 내 법률적 충돌 문제는 다양하다. 이용자들이 메타버스 안에서 직접 제작하는 옷, 액세서리 등 창작물들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나이키 운동화를 똑같이 베낀 가상의 운동화가 메타버스에서 거래된다면 재산권 침해가 될 수도 있다. 염호준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메타버스에 무단으로 구현된 브랜드 아이템을 과연 전통적인 의미의 상표권 침해라고 볼 수 있는지 자체가 논란”이라며 “메타버스에서 온갖 창작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기 때문에 재산권 문제가 불거질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메타버스에서 열리는 공연 등 각종 이익 사업들에서 발생한 수익 징수·분배 기준도 앞으로 만들어야 할 규정이다. 그동안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저작권 단체와 사용료 징수 규정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기 때문이다. 김경숙 상명대 교수는 한국콘텐츠진흥원 간행물에서 “메타버스에서 기존 공연 사용료 정산 방법이 적용 가능할 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실 속에서의 정산 방법과 메타버스 내에서이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메타버스 내 개인정보보호 역시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김지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기존 사이버 공간은 개인정보의 제공, 공유 시점이 비교적 명확하지만 메타버스에서는 실시간 상호작용이 활발해 일일이 추적하기 어렵다”며 “아바타의 위치정보가 위치정보법 적용 대상이 되는지 등 새로운 문제들이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