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일 한밤중에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의 한 목조 주택에서 불이 나 소방차가 출동했다. 하지만 도로에서 이 집으로 통하는 길이 모두 비좁은 골목이거나 가파른 계단이어서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했다. 결국 구급대원들이 길게 이어진 소방 호스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화재를 진압해야 했다. 창신·숭인동 일대는 2014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돼 지금까지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된 곳이다. 하지만 ‘역사성 보존’을 이유로 노후 지역이 그대로 방치되면서 화재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이 같은 문제는 창신·숭인동에 그치지 않는다. 사업이 완료된 전국 12개 도시재생 선도구역에 속한 30개 행정동을 포함, 이후 진행된 후속 재생 프로젝트까지 총 93개 행정동 가운데 쇠퇴를 멈춘 곳은 2개 동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도시재생 사업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선도사업 가운데 쇠퇴 멈춘 곳 ‘0’, 전체 완료 사업의 2.2% 불과=국토교통부 산하 LH 도시재생정보체계에 따르면 현재 460개의 전국 도시재생사업 가운데 지난해 말까지 사업이 마무리된 사업은 선도사업지역을 포함해 모두 58개 사업이다. 행정동 기준으로는 93개 동이 해당한다. 서울경제가 LH의 전국 행정동 쇠퇴현황 자료(2020년 말 기준)를 분석한 결과 재생이 마무리된 93개 동 가운데 84개 동이 여전히 쇠퇴 기준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30개 동은 선도사업지역 12개에 속한 곳이다.
쇠퇴에 해당하지 않는 9개 동 가운데 7개 동은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한 2017년 말 당시에도 쇠퇴가 일어나지 않은 지역이다. 결국 광주 광산구 도산동과 강원 춘천시 근화동 2개 동만이 도시재생을 진행한 후 쇠퇴가 멈췄다. 93개 동 가운데 2개 동(2.2%)만이 도시재생사업의 정책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에서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우리동네살리기 활성화 사업이 진행됐지만 2020년 말 기준 여전히 쇠퇴가 진행 중이다. 사업이 진행된 2년 동안에도 쇠퇴가 멈추지 않으면서 5년 연속 인구가 줄었고 4년 연속 사업체 수도 감소했다. 최대 시점 대비 인구 감소폭은 2017년 -12.3%에서 2020년 -27.5%로 오히려 심화됐다. 같은 기간 노후건축물 비율은 68.3%에서 68.7%로 증가했다.
◇수조 원 들여놓고 이제서야 “통합 성과 측정”…전문가들 “개념 재정립해야”=도시재생의 효과는 사실상 전무한데도 투입 예산은 조 단위에 이르고 있다. 국회예산처에 따르면 2017년까지 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 민간투자 포함 누적 2조 7,407억 원이 투입됐다. 2018년에는 2조 1,084억 원이 들어갔고 이후 투입 규모가 급증하면서 2019년 한 해에만 3조 5,461억 원이 집행됐다. 국비만 따로 떼어 봐도 2018년 1,578억 원에서 2020년에는 6,776억 원으로 늘었다. 2021년과 2022년의 경우에도 여전히 2018년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예산은 늘지만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공개적인 정책 성과 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는 ‘추진실적평가’라는 지표를 이용해 도시재생을 마친 지역의 성과를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예산집행률과 공정률 등 사업 완료 정도를 확인하는 용도에 그친다. 관계 기관의 설명을 종합하면 준공 이후 쇠퇴도가 달라졌는지를 파악하는 평가 자료가 존재하지만 이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도시재생과 관련 종합 성과 평가라는 새로운 평가 체계를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성과 평가 지표뿐만 아니라 도시재생사업 방식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해외의 경우 결국 인구 및 고용 증가를 도시재생의 핵심 지표로 삼고 수십 년까지 기간을 두고 진행할 뿐더러 도시재생에 정비사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면서 “한국도 도시재생의 개념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주선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는 “국내 도시재생 사업에서 활동가들을 지원해 마을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개념은 애초 미국에서 노후 지역에 유입된 저소득 유색인종의 범죄율 등을 낮추기 위해 도입한 요소가 맥락에 맞지 않게 도입된 측면이 있다”며 “주택과 기반시설이 정비돼 주민들의 자산가치가 오르지 않으면 커뮤니티를 강조해도 결국 주민들은 떠나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