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골라준 콘텐츠, 2% 부족해…'인간 큐레이션' 다시 뜬다

■인공지능 빈틈 채우는 인간지능
AI 비슷한 콘텐츠만 추천해 식상
'카카오 뷰' 편집자가 선별해 노출
'플로' 음악 사용자 재생목록 공유
AI의 한계 '인간의 촉'으로 채워
새로움 원하는 소비자 취향 저격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통한 추천 서비스를 강화해왔던 콘텐츠 업계에 다시 사람이 직접 콘텐츠를 선별하는 ‘휴먼 큐레이션’ 바람이 불고 있다. 유튜브 같은 콘텐츠 서비스들은 AI 알고리즘을 적용해 개인 맞춤 콘텐츠를 추천하는 서비스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비슷한 콘텐츠만 계속 추천해 ‘확증 편향’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한계도 명확하다. 콘텐츠 업계는 이 같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인간 고유의 감수성으로 선별한 콘텐츠를 추천하는 휴먼 큐레이션을 AI 알고리즘에 더하는 추세다. 기존 AI 추천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콘텐츠 에디터가 인플루언서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음원 업계는 기존 AI 추천 기술에 유저나 인플루언서들이 직접 재생 목록을 만들어 추천하는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AI 추천 알고리즘 때문에 비슷한 취향의 음악만 반복 추천되는 서비스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용자들이 늘어나자 사람이 개입해 아예 새로운 장르나 노래를 소개하는 방식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플로(FLO)는 지난 7월부터 크리에이터(유저)들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 플로 큐레이터팀이 심사를 한 뒤 애플리케이션 메인 화면에 노출하는 ‘플로 둘러보기’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총 8회에 걸쳐 인디·락, 어쿠스틱 음악 등 다양한 주제의 재생 목록을 소개하고 있다. 플로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는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재생 목록을 선곡하지만 AI 추천 모델의 도움을 받아 콘셉트에 맞는 곡들도 추가 선곡할 수 있다”며 ‘수작업’ 추천과 AI 추천 모델 간 상호 보완 관계를 설명했다. 벅스는 최근 국내 음원 업계 최초로 ‘콜라보 앨범’ 기능을 도입했다. 다른 이용자들과 함께 재생 목록을 만들고 함께 편집할 수 있는 기능이다. 특히 벅스 앱을 설치하지 않은 사람도 재생 목록 링크만 확보하면 곡을 추가할 수 있어 실시간으로 다양한 음악 취향을 공유할 수 있다.


블로그·뉴스 등 텍스트 콘텐츠에도 휴먼 큐레이터가 속속 도입되고 있다. 카카오(035720)는 지난달 카카오톡 내 ‘샵(#) 탭’을 ‘카카오 뷰’로 업그레이드했다. 콘텐츠 편집자가 직접 콘텐츠를 선별해 ‘보드’ 형태로 선보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존 샵 탭은 카카오가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선정한 뉴스 등 콘텐츠를 노출하는 방식이었다. 조수용 카카오 대표는 “AI 알고리즘은 누구의 관점도 담지 않은 배열이라는 한계가 있다”며 “사람들의 고유한 관점이 담긴 콘텐츠를 추천함으로써 조명받지 않는 작은 이야기들도 끄집어 내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올해 7월 말부터 뉴스 언론사 편집판에 ‘심층기획’ 영역을 추가했다. 기존에는 언론사가 직접 고른 6개의 주요 기사만 노출할 수 있었지만 심층기획 영역을 통해 개별 언론사들이 장기간 취재한 탐사 기획들도 선보일 수 있게 했다. 기사 노출에 언론사의 선택 옵션을 강화한 것이다.


휴먼 큐레이터가 부상하고 있는 것은 AI 알고리즘만으로는 이용자들의 욕구를 채우지 못한다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AI 큐레이션은 기본적으로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본 콘텐츠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카카오의 한 관계자는 “AI 큐레이션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조회 수 저조 등으로 인해 AI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콘텐츠가 존재할 수 있다”며 “휴먼 큐레이션은 사람이 직접 관점을 담아 콘텐츠를 선별하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고 숨겨져 있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들도 선별해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자들 역시 AI 알고리즘 추천에 갇히는 현상 자체를 답답해하면서 새로운 콘텐츠를 원한다. 이용자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발굴하지 못하고 추천 콘텐츠만 소비하는 ‘필터 버블’에 반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반면 사람이 직접 추천해준 콘텐츠를 구독하게 되면 소비자가 주도권을 갖게 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성동규 중앙대 교수는 “뉴스 플랫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용자들이 스스로의 판단에 기반해 뉴스를 선택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주는 것”이라며 “구독을 통해 최대한 이용자들의 선택권을 높여주는 방식은 기존의 AI 알고리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휴먼 큐레이션 시장이 성장하면 열성 구독자들을 모아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최근 꼭 필요한 콘텐츠를 선별해 보기 좋게 배열해주는 콘텐츠 에디터들이 플랫폼을 통해 몸값을 높이고 있다. ‘디노먼트’는 페이스북 책 큐레이션 계정 ‘책 끝을 접다’를 통해 약 56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며 리디에 인수됐고 유튜버 ‘때껄룩’은 ‘어스름한 침대 속에서 듣기 좋은 팝송’ 등 다양한 테마의 재생 목록을 추천해 누적 1억 3,00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특히 카카오 뷰의 경우 에디터들이 유명세를 얻는 것을 넘어 실제로 광고 수익 일부를 배분받을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휴먼 큐레이터들이 열성 구독자를 모아 인플루언서로 거듭나면 수익도 얻을 수 있다”며 “콘텐츠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는 양질의 콘텐츠가 쌓여 경쟁력을 높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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