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보다 손님들이 많이 시장을 찾긴 하겠지만 결국 전통 시장을 찾던 사람들만 다시 올 게 뻔해요. 추석 대목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매출이 조금만 오르겠죠.”
정부가 11조 원 규모의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재난지원금)’을 전통 시장에서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의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대형 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재난지원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뒀지만 정작 아직 체감할 정도의 변화는 없었다.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한 편의점에서 고가의 전자 기기를 구매하려는 사람들까지 나오자 소상인들의 기대감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8일 서울경제 취재진이 찾은 서울 주요 전통 시장은 모두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상인들은 아침부터 상품을 진열하며 장사 준비에 나섰는데 시장을 오가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일부 상인들은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하면서 이전의 추석 대목을 회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인들은 매출이 큰 폭으로 오르지 않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7년째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이동혁(45) 씨는 “대형 마트에서 재난지원금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은 적극 찬성한다”면서도 “추석 대목을 앞두고 재난지원금 때문에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기대가 있지만 명절 대목이라는 의미 자체가 없어진 지 오래라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시장에서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최 모 씨도 “선물용과 제사용으로 팔리는 과일이 많아 명절 특수를 누려왔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 때문에 명절에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니 큰 기대가 되지 않는다”며 “재난지원금이 나온다고 사람들이 과일을 더 많이 먹거나 하진 않아 크게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이 많이 풀려 물가가 올라 상인들의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오른 물가가 재난지원금 소진 이후에도 유지되면 상인들에게 피해로 다가올 것이란 우려까지 있는 게 현실이다. 통인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60대 A 씨는 “재난지원금이 풀리면 소·돼지 값도 연달아 오른다”며 “오르는 건 금방이지만 물가가 다시 내려오기까지는 오래 걸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재난지원금이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완화해야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량리시장 상인 B 씨는 “우리 가게는 주로 인근 식당에서 대량 구매를 하는데 거리 두기 조치로 식당들이 모두 문을 닫으며 우리까지 고사 직전”이라며 “재난지원금이 나온다고 사정이 달라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으로 고가의 전자 기기나 고급 주류를 사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속속 나오자 상인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한 편의점 업계는 지급 시기에 맞춰 무선 이어폰, 스마트워치, 전동 킥보드 등의 고가 전자제품 프로모션에 나섰다. 위스키·와인 등 고가의 주류를 구매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통인시장 상인 C 씨는 “코로나19 시기 힘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혈세로 재난지원금을 주는 거 아니냐”며 “버티자는 각오로 1년 넘게 버텨온 소상공인들은 오히려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