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미국 시간) 통화해 “양국 간 경쟁이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합의한 것은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인 가운데 양 정상이 ‘관계 정상화’를 공통으로 언급했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두 정상 간 통화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후였던 지난 2월의 ‘상견례’ 이후 7개월 만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통화에서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바꿀 뜻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동안 날을 세워온 대만 문제에서 한발 물러나며 관계 회복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철군 전략 실패와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코너에 몰린 바이든 정부가 대중 관계 관리를 통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날 90분 동안 이어진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관계는 세계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양국 간 경쟁이 충돌로 비화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미중 관계를 정상 궤도로 회복시키기를 원한다”고 했다. 백악관도 이날 통화 직후 성명에서 “이번 논의는 양국 간 경쟁을 책임감 있게 관리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 중 일부”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산중수복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山重水復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이라는 남송 시대 시인 루여우의 시 '유산서촌'의 일부분을 언급했다. ‘산과 물이 겹겹이 막아 길이 없나 했더니 갑자기 버드나무가 우거지고 꽃이 만발한 마을이 있었다’는 뜻이다. 악화하던 미중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화답의 뜻을 담아 이 시구를 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먼저 대중국 공세를 완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이번 통화는 바이든 대통령이 먼저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고위 관료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2월 미중 알래스카 회담 이후 양국 간 실무진 협의에 진전이 없자 시 주석과의 통화를 먼저 요청했다”고 전했다.
당초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아프간 철군 직후 백악관 연설에서 “중국과의 경쟁에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정도로 대중국 ‘파상 공세’를 예고한 바 있다. 그러나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의 대혼란으로 유럽 동맹국으로부터도 불신을 샀고 중국은 이를 기회로 ‘미국은 믿을 수 없는 패권국’이라는 내용의 선전 선동을 강화했다. 여기에 미국 내에서 델타 변이 확산으로 경제가 다시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며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중국과의 갈등을 적당한 수준에서 관리해나가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재계에서 주요 2개국(G2) 간 무역 분쟁으로 피해가 큰 만큼 ‘중국과 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이날 통화에서 시 주석이 ‘1971년 해빙’을 언급한 것을 두고 양국 간 정상회담이 조만간 개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1971년 해빙’은 리처드 닉슨 전 행정부 당시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해 미중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튼 일을 가리킨다. 외신들은 다음 달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G2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을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