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곳에서 총 대신 책 든 사람들, ‘세종대왕상’ 주인공 됐다

제32회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
과테말라·남아공·인도 단체 수상
낙후된 지역 문해 교육·문맹퇴치사업

서울 광화문의 세종대왕상./연합뉴스

과테말라의 차훌은 수도인 과테말라시티로부터 200㎞ 넘게 떨어진 곳에 위치한 농촌 지역으로, 마야인의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마야 문명의 흔적도 간직하고 있다. 문제는 교육 여건이다. 국가 공용어인 스페인어보다 마야어 계통인 토착어 익실(Ixil)이 흔히 사용되는데다 공교육의 영향도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 읽고 쓰지 못하는 성인이 많고, 아이들 역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기고 차훌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간 사람들이 있다. 2004년 설립 된 비정부 기구 ‘무한한 지평선 익실(Ixil)’이다. 이들은 교육이 사람들의 미래를 더 밝게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글을 읽고 쓸 줄 몰라 선택의 여지 없이 집안 일만 하거나 농사만 짓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아이들에게 주겠다는 게 ‘무한한 지평선 익실’의 목표다. 이들의 노력은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계속됐다. 원격 프로그램을 활용해 문해 교육을 지속했다. 지역 사회 도서관에서 청소년들이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 등을 활용해 학습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역 청소년들을 더 나은 미래로 이끌겠다는 ‘무한한 지평선 익실’의 목표는 유네스코의 눈에도 들었다. 이들은 올해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의 주인공이 됐다.



과테말라 비정부기구 ‘무한한 지평선 익실’의 문맹 퇴치 활동 현장./사진제공=문체부

11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1965년에 9월 8일을 ‘세계 문해의 날(International Literacy Day)’로 지정한 것을 기념해 매년 이날 국제사회 문맹 퇴치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에 상을 주고 있다. 1990년부터는 상의 이름이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으로 정해졌다. 한국 정부가 지원을 결정했을 뿐 아니라 한글을 창제해 백성들의 문자해독능력, 즉 문해율을 크게 개선한 세종대왕의 업적이 상의 취지와 잘 통한다는 점에서다.


상을 받을 수 있는 개인이나 단체는 문맹퇴치사업에 직접 종사하거나 문맹퇴치사업 계획을 수립·조사하는 업무에 기여한 자, 문맹 퇴치 관련 학술연구에 업적을 남긴 자, 문맹 퇴치에 공이 있는 언론 등이다. 수상자나 수상 단체에는 미화 2만 달러의 상금이 수여 된다.



인도 국립개방연구원에서 학습 중인 어린이들./사진제공=문체부

남아프리카공화국 ‘쿠푸 아동문화재단’의 어린이 교육 활동./사진제공=문체부

올해는 과테말라 ‘무한한 지평선 익실’과 함께 인도의 ‘국립개방교육원’, 남아프리카공화국 ‘푸쿠 아동문학재단’도 함께 상을 받았다.


인도의 국립개방교육원은 인도 교육부 산하 독립기관으로, 2016년부터 청각장애인과 난청 학습자들에게 중·고등학교 7개 과목에 대한 수어 학습 영상 콘텐츠와 수어 사전을 제공하고 있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2만4,285명이 프로그램 혜택을 받았다. 국립개방교육원은 더 많은 장애인들이 학습할 수 있도록 수어 콘텐츠와 평가도구도 개발하고 있다. 남아공의 ‘푸쿠 아동문학재단’은 빈곤 아동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단체다. 물질적으로 빈곤하고 소외된 지역에 사는 어린이들이 남아프리카 토착 언어로 이뤄진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독서와 도서 개발을 장려하는 비정부단체다.


이진식 문체부 문화정책관은 “한글을 창제하고 문해율을 높인 세종대왕의 정신이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전 세계 문해 사업과 문맹 퇴치 노력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