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쓰레기는 ‘의외로’ 당대 문명과 문화를 이해하는 유용한 흔적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쓰레기 고고학(Garbage Archaeology)이다. 미국 출신의 저명한 현대미술가 마크 디온(60)은 이 방법을 예술에 접목했다. 해양 쓰레기를 수집한 그는 이것들을 깨끗하게 씻고 분류해 고급 원목 캐비닛에 박물관 진열방식으로 배치했다. 마치 16~17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 귀족들이 신대륙과 아프리카·아시아를 여행하며 수집한희귀 표본들을 진열했던 것처럼 말이다. 디온은 1996년 독일의 발트해와 북해를 여행하며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고 1997년 베니스비엔날레와 그해 열린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카셀도큐멘타 등 굵직한 예술행사를 휩쓸었다.
디온의 국내 첫 프로젝트가 서울 종로구 삼청로7길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개인전 형식으로 선보이고 있다. 작가는 코로나19 시국을 뚫고 지난달 방한해 한국의 서해안을 훑었다. 충남도청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충남연구원, 해양환경공단 등과 협력했다. 유난히 플라스틱 병뚜껑이 많았다. 색깔도 제각각이어서 붉은색과 분홍색, 노란색과 초록색, 파란색 순으로 배열했더니 무지개처럼 곱게 놓였다. 서랍 한 칸은 신발 한짝과 마스카라, 칫솔과 장갑 등 어쩌다 바다로 흘러왔는지 의아한 물건들이 차지했다. 플라스틱 음료수병은 폭 2.5m의 진열장을 빙 두르고도 남는다. 희한하게도 일회용라이터 또한 한 층 전체를 꽉 채울 정도로 많다. 1층 전시장 가운데 놓인 신작 ‘해양 폐기물 캐비닛’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한국의 해양 문제는 다른 선진국들과 얼추 비슷하고 멕시코, 알래스카, 플로리다의 바다와도 마찬가지”라면서 “산업화 된 선진 자본주의 국가 바다쓰레기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디온은 “바다에 버려지는 가정 용품의 대부분은 음료수병이다”면서 “전체 해양 쓰레기의 70%는 해양산업의 잔해인데 해양을 착취하고 쓰레기와 잔해물까지도 바다로 돌려보내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말쑥하게 정리해 귀한 박물관 유물처럼 선보이는 ‘아이러니의 작가’ 디온의 강점은 유머와 위트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시장 한쪽에 ‘한국의 해양생물’이라는 퍼포먼스형 설치작업도 선보였다. “새로운 나라를 방문하면 맨 처음 대표적인 박물관을 찾아가고 그런 다음 문화적 무의식이 투영되는 벼룩시장이나 쓰레기장을 찾아가 사람들이 보여주고 싶지 않아하는 것들 속에서 구성원들의 가치기준, 열정과 집착을 찾아내 본다”고 말하는 작가가 아침마다 서울의 수산시장을 누비며 갈치,조개, 오징어 등의 해산물을 사들여 해양생물학자의 실험실을 꾸몄다. 흰 실험가운을 입고 이들을 정밀 묘사하는 이들은 한국에서 섭외한 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이다. 디온은 “20세기 초 해양생물학자들의 활동은 새로운 땅에서 찾은 새로운 종을 구분하는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높은 산, 가장 낮은 해저에 대한 연구는 있었으나 그 중간층에 대한 것을 빠뜨린 셈”이라며 “손쉽게 접하고 매일 접시에 놓이는 바다 생물을 더욱 잘 알기 위해 그것들을 그려보면서 친밀함을 높이고 생각을 정리할 계기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디온의 대표작들을 축약적으로 모은 2층 전시장에서는 공룡 작업 ‘브론토사우루스’를 만날 수 있다. 흰 좌대 위에 놓인 공룡은 끈적이는 타르로 이뤄진 제 그림자를 밟고 서 있다. 작가는 “죽은 공룡을 비롯한 과거 생물의 사체가 화석연료를 이룬다는 개념이 널리 퍼졌고 급기야 공룡을 로고로 사용한 정유회사도 있었다”면서 “석유를 제공한 공룡은 석유자본주의의 신화를 친숙하게 만들려는 수단으로까지 이용된 셈”이라고 말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조각 받침인 좌대 문이 빼꼼 열려 그 안에 담긴 청소용품들이 다 보인다는 점. 일부러 보이게 한 것인데 ‘닫아주는’ 관객들이 생각보다 많다. 작가는 “지난 2016년 뉴욕에서 처음 전시했을 때 닫아주고 가는 관객들 때문에 하루 최소 4번씩은 점검하고 다시 열어둬야 했다”면서 매끄러운 전시를 위해 은폐되는 노동력의 가치에 대해 강조했다. 웃으며 얘기했지만 더없이 진지하다. 전시는 11월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