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20대 청년 10명 중 7명은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이들은 노동을 통한 ‘노력형 부자’가 될 가능성도 작다고 전망했다. 희망을 품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 청년들이 그만큼 우리 고용시장과 경제 상황을 암울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열심히 일해도 부의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인식 아래 근로 의욕도 크게 저하된 만큼 청년들의 구직 단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 조사 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만 18~29세 5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2.9%는 청년 일자리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좋아질 것’이라는 응답자(6.4%)의 10배 규모이며 ‘현재와 비슷할 것(30.7%)’이라는 응답자의 2배가 넘는다.
특히 69.5%는 원하는 직장에 취업할 가능성도 작다고 답했다. 원하는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답변(28.6%)보다 약 2.4배 높다. 다수의 청년들이 미래 일자리 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의 요소는 단순히 높은 임금에 국한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조건은 만족스럽다는 가정하에 좋은 일자리의 최소 연봉’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0.2%가 ‘3,000만~4,000만 원’을 꼽았다. ‘4,000만~5,000만 원’이라고 답한 사람은 20.6%, ‘2,000만~3,000만 원’은 15.2%였다. 고용노동부 임금직무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5~29세의 평균 연간 임금 수준 추정치는 3,217만 원으로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의 최소 연봉으로 생각하는 범위 안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일자리 상황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관련해 한경연은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의 조건으로 높은 연봉 외에도 근로 환경 등 다른 조건들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청년들의 근로 의욕을 고취시킬 다양한 인센티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년층 사이에서 ‘평생직장’의 개념도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 응답자의 65.2%는 ‘평생직장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희망하는 은퇴 시기는 61~65세가 30.1%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56~60세가 26.3%로 높았으며 만 66세 이상에 은퇴하고 싶다는 답변은 19.7%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열심히 일한다고 부자가 될 수는 없다’는 박탈감이 청년들의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들의 근로 의욕을 저하시키는 뉴스로 ‘부동산 폭등(24.7%)’이 첫 번째로 꼽혔는데 특히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29.2%가 이를 가장 큰 요소로 지적했다. 물가 상승(21.5%), 세금 부담(20.4%)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총자산 규모는 10~20억 원 수준이 23.5%로 가장 높았으며 20억~50억 원이 22.9%, 100억~1,000억 원이 20.6%였다.
청년 중 63.9%는 정년 연장이 청년 신규 채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 연장을 해야 한다면 근로 형태 다양화 등 고용 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33.6%로 가장 높게 나왔다. 이 밖에 임금피크제 도입이 27.0%, 직무 능력 중심 임금 체계 도입이 22.0% 등이었다.
원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도 노동시장이 유연화해야 한다는 답변이 22.4%로 가장 높게 차지했다. 기업이 국가 경제 상황에 따라 고용 문제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구직자 입장에서도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사고가 작용한 것이다. 또 ‘고용 기업 인센티브 확대(18.7%)’ ‘창업 활성화(15.5%)’ ‘기업 성장 방해하는 규제 개선(13.6%)’ 등도 필요한 정책으로 제시됐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청년들의 부정적인 일자리 인식은 청년 구직 단념자 양산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며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개혁 등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