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해 9년간 진행 중인 5조 원대 국제 소송의 결론이 조만간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쟁점이 상당히 복잡하고 증거량도 많아 결과를 예단하기 쉽지 않다”며 “조금이라도 승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국익에 부합하기 위해 단계별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한 만큼 “패소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천문학적인 규모도 규모지만 한국 금융·조세정책에 대한 대외 신인도를 가늠할 시험대라는 점에서 결과가 주목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엘리엇 등의 1조 원대 국제 소송도 본격적인 공방에 돌입한 상태라 정부 대응에 관심이 모인다.
법무부는 14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와 관련해 국무조정실·금융위원회·국세청과 합동 브리핑을 열고 론스타를 비롯한 각 사건의 진행 현황을 설명했다.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S 사건은 총 9건으로 론스타·엘리엇·메이슨·쉰들러 등과 분쟁 중인 6건은 아직 판정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가장 큰 관심은 정부가 처음으로 피소된 ISDS이자 규모가 가장 큰 론스타 사건이다. 론스타 사건은 절차 종료 선언만을 남겨둔 상태라 이르면 연말 늦어도 내년께 판정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벨기에에 본사를 둔 론스타는 지난 2007년 HSBC를 외환은행 매각 상대로 삼았지만 무산되자 2012년 하나금융에 외환은행 보유 지분 전체를 넘겼다. 론스타는 금융 당국이 HSBC에 대한 매각 승인을 규정된 심사 시간을 넘기도록 부당하게 지연시켰고 하나금융에 매각했을 당시에는 가격을 깎도록 압력을 가했다며 이로 인한 손실 약 46억 8,000만 달러(약 5조 1, 480억 원)를 배상하라는 취지의 ISDS 소송을 2012년 11월 제기했다.
양측은 9년간 서면 증거 1,546건, 증인·전문가 진술서 95건 등 방대한 증거자료를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 중재판정부에 제출했고 미국 워싱턴DC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네 차례 공방을 벌였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주요 쟁점은 외환은행 매각 승인과 론스타에 대한 각종 과세 처분, 손해액 산정에 관해서다. 론스타 측의 ‘매각 승인 지연·매각가 인하 압력’ 주장에 정부는 “법에 규정된 매각 승인 심사 기각은 권고적인 것에 불과하고 당시 론스타는 각종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정당하게 심사 기간을 연기했다”고 맞섰다. 또 매각가 인하에도 개입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론스타 측은 한국·벨기에 이중과세방지협정에 따른 면세 혜택도 정부에 의해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론스타는 오로지 면세 혜택을 누리기 위해 벨기에에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인 만큼 실질과세 원칙을 적용했을 뿐이라고 대응했다.
쟁점별로 첨예한 법리 다툼이 벌어지고 있어 주무 부처인 법무부도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상갑 법무부 법무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언제든지 판정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정기적으로 분쟁대응단과 관계부처 회의를 열어 현황을 점검하고 후속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소송의 특성상 저희가 100% 승소, 승패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론스타 측의 ‘판정승’에 무게가 기우는 모습이다. 금융 당국의 초기 대응이 미진했기 때문이다. 국제중재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앞서 금융위원회가 론스타가 소위 산업자본인지, 금융자본인지에 대한 판단을 늦게 내린 점이 잘못이다”며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하나금융에 매각할 수 있도록 승인한 게 이번 사태의 발단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약 8,470억 원)과 메이슨(약 2,200억 원)이 삼성물산 합병으로 피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ISDS의 경우 서면 공방을 마치고 올해 11월과 내년 3월 각각 심리 기일이 예정돼 있다. 이들 사모펀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중재판정부의 관할권이 없고 국민연금공단의 주주의결권 행사를 외국인투자가에 대한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ISDS 판정이 불리하게 나오더라도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전문가는 “법원에서 판정 취소가 인용되는 경우는 10% 안팎”이라며 “시간을 벌 순 있겠지만 그사이 이자가 늘어난다는 측면에서 올바른 판단인지 의문이 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