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5일 동해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전날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가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방안을 협의했고,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접견하는 등 외교가의 시선이 쏠린 시점이었다. 또 이날 오후에는 우리가 자체 개발한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가 예정돼 있었다. 북한으로서는 우리 정부와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국에 확실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을 선택해 강력한 무력 시위를 한 것이다.
15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 올린 시간은 낮 12시 34분께와 12시 39분께다. 문 대통령과 왕 부장의 접견이 끝난 시점이었다. 또 북한이 지난 13일 장거리 순항미사일(1,500㎞)을 시험 발사해 성공했다고 발표한 지 이틀 만이다. 북한이 이날 발사한 미사일은 최근 개량 중인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미사일은 고도 60여㎞로 800㎞를 비행한 뒤 동해상에 떨어졌다.
우리 군은 이와 별개로 이날 오후 예정된 SLBM 등 첨단 신무기 4종 세트를 시험 발사했다. 미사일 전력 발사 시험은 문재인 대통령, 서욱 국방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졌다. SLBM의 잠수함 수중 발사에 성공한 것은 미국·러시아·중국 등에 이어 일곱 번째다. 저위력 핵무기에 준하는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고위력 탄도미사일(가칭 ‘현무-4’)과 적함을 파괴할 초음속 순항미사일(속칭 ‘한국판 야혼트’) 개발에도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또 국내 개발 중인 차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에 탑재돼 적의 지상 목표를 섬멸할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속칭 ‘한국판 미니 타우러스’)의 비행 및 표적 타격에도 성공했다.
우리 군의 SLBM 발사는 예정된 행사였는데 북의 돌발 행동으로 마치 남북간 미사일 경쟁이 벌어진 형국이 돼 버렸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의 임기 말 가장 공을 들이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도 만만치 않게 됐다. SLBM 시험발사가 종료된 이 날 저녁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북에 강경한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미사일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도 이를 그냥 듣고 있지만은 않았다. 대남 관련 강경발언을 주도했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통해 “남조선의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의 미사일 전력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에 충분하다’는 부적절한 실언을 했다”며 “한 개 국가의 대통령으로서는 우몽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문 대통령과 김 부부장의 발언에서 보듯 한반도가 앞으로 격랑에 휩싸일 가능성은 높아졌다. 우리 정부와 미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관련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이라는 입장이지만 북한에 제의한 대화 참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 등에 적대적 대북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의 주된 요구는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이다. 북한은 광물 수출과 생필품 수입 허용, 정제유 수입 확대 등이다. 현재 한미가 북한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것은 보건, 생수 등이다. 북한 입장에선 선호도가 떨어지는 조건인 셈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미국과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당분간 도발 강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의 한계치가 어디인지 최대한 시험해보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이라며 “모든 테스트가 끝나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역시 “북한이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핵과 관련해 진전된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며 “핵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한편 이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관련 국제사회에서도 규탄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며 북한의 주변국 및 국제사회의 다른 국가들에 위협을 제기한다”고 즉각 비판 성명을 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역시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언어도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