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추진한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개발 특혜 의혹의 한가운데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가 있습니다. 화천대유와 그 관계사(천화동인 1~7호) 7곳의 총자본금은 3억 5,000만 원으로 대장동 사업을 위해 성남시가 시행사로 설립한 ‘성남의뜰’의 지분 14.28%(보통주)를 보유중입니다.
성남의뜰 재무제표에 따르면 화천대유는 2019년 270억 원, 2020년 206억 원, 2021년 100억 원 등 3년간 총 577억 원을 배당받았습니다. 나머지 보통주(85.72%)를 가진 SK증권(001510)은 3,463억 원을 수령했습니다. SK증권은 특정금전신탁 형태로 투자해 사실상 신탁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배당을 챙기는 구조입니다. 이 특정금전신탁에는 화천대유의 관계사인 천화동인 1~7호가 참여했습니다. 즉, 3년간 성남의뜰이 배당한 총 5,903억 원 중 4,040억 원이 화천대유와 관계사에 들어갔습니다. 총자본금 3억5,000만 원을 고려하면 1,153배의 수익을 올린 셈입니다.
당장 펀드 수익률은 마이너스인데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벼락거지’신세가 된 국민들은 1,153배의 수익률에 기가막힐 수 있습니다. 상상 이상의 수익률에 야당은 특정인을 위한 맞춤형 사업이 아니냐며 이 지사를 향해 공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같은당 대선 경쟁자인 이낙연 전 대표 측에서 조차 “감옥간 MB가 떠오른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이 지사는 급기야 16일 수사를 공개의뢰했습니다.
페이스북에 수사를 의뢰한 이 지사의 글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수사결과에 따라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다’ 어떻게 보셨나요.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이 ‘기억 앞에 겸손’이라던가 ‘가정을 근거로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식으로 ‘책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과는 달리 상당한 결기와 자신감이 느껴지셨나요.
사실 이 지사의 수사공개 의뢰 글이 ‘화천대유’의 숨겨진 비밀을 푸는 열쇠로 보입니다. 이 지사 발언을 토대로 대장동 개발의 주요 특징을 짚어보겠습니다.
초기 대장동 개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성남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04년 대장동 개발을 추진하다가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2010년 6월 사업을 포기했고, 이후 주민 중심으로 민영개발에 나섰지만 성남지역 전 국회의원의 동생이 개발업자에게 금품을 수수한 비리로 이마저도 좌초됩니다.
이 지사가 취임한 뒤 2014년 민영개발을 공영개발 방식으로 바꾸면서 탄력을 받지만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장동 개발 이익을 신흥동 제1공단 공원화 사업에 재투자하는 방식의 이른바 융합개발을 도입한 게 걸림돌이 됩니다. 제1공단 민간 사업자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업이 다시 지연되자 이 지사는 사업방식을 변경해 대장동 개발을 1공단 공원화와 분리해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사업 진행은 속도감 있게 진행됐습니다. 성남도시개발공사는 2015년 8월 ‘성남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사로 ‘성남의뜰' 컨소시엄을 선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지사는 ‘신의 한 수’를 씁니다. 최대 이익을 남기려는 건설사들이 배당을 두고 경쟁을 할 경우 공익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컨소시엄에 건설사 배제 원칙을 세운 겁니다. 성남도시개발공사를 제외한 금융사 5곳으로 이뤄진 컨소시엄 구성이 가능했던 이유입니다. 즉, 시중은행의 지분 참여는 이 지사의 원칙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부동산 개발사업에 증권사와 신탁사들이 참여해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흔하지만 시중은행들은 좀처럼 직접 출자를 꺼려합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까닭에 대부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에만 관심을 쏟기 때문입니다.
우선주 배분도 은행을 안심 시켰습니다. 일반적으로 우선주는 의결권이 부여되지 않는 대신 보통주보다 더 높은 배당금을 지급하는 주식입니다. 은행의 수익을 보장한 것도 결국 컨소시엄 참여자들 간 배당경쟁으로 공영개발의 취지가 희석되지 않으려는 목표였습니다. 특히 성남도시개발공사가 50%+1주의 우선주를 가져가면서 의결권도 챙겼습니다.
컨소시엄에 있는 하나은행과 기업은행 등도 의결권을 가진 2종 우선주를 가져가면서 보통주 100%인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의 견재장치까지 만들어 놨습니다.
아울러 이 지사가 밝힌 대로 성남시는 사업 초기 추산액 4,583억원 규모의 이익을 확정했습니다. ‘불로소득은 시민에게’라는 원칙 하에 시민배당과 공원화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사업시행 전 최대치의 이익금을 미리 환산해 확보해 버린 겁니다. 성남시 입장에서 미리 돈을 받았으니 공동사업 과정에서 민간과의 갈등도 사라졌습니다.
같은 구조는 아니지만 최근 일산대교 공익처분 논란의 핵심 이슈인 최소운영수입보장액(MRG)을 지자체가 거꾸로 민간사업자에게 부여해 수익금을 챙긴 셈입니다. 민자사업으로 추진됐던 서울 지하철 9호선, 우면산터널 사업, 대구 4차 순환도로(대구), 백양터널 및 수정산터널(부산), 마창대교(경남), 제2순환도로(광주)등은 지자체가 민간 대주주의 손실을 보전해 주는 MRG계약 탓에 두고두고 재정 부담을 키웠습니다. 이들 사업과 대장동 개발 사업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지만 철저한 지자체 최우선 사업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 지사가 역발상으로 대장동 개발사업을 지자체 우선으로 밀어붙인 증거가 화천대유 대표의 “공산당”식이었다는 비난 발언인 겁니다.
다만 최근의 논란은 바로 지자체 최우선 사업의 부작용으로 보입니다. 이 지사는 “사업자의 손해나 이익, 지분 배당은 사업자가 알아서 할 일이고, 알 방법도 없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즉, 보통주를 가진 화천대유와 SK증권 특정금전신탁에 참여한 천화동인은 손해도 이익도 자기 몫이었습니다.
이 지사 입장에선 이들 민간사업자들이 부동산 가격 폭등 등에 원인으로 1,153배의 수익을 챙겼다는 사실 자체도 사업의 취지와 목적에는 전혀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남의 일’인 셈입니다. 마찬가지로 화천대유가 사업이 시작된 6년 중 절반가량을 당기순손실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사실도 이 지사에게는 안중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자본시장에서는 상식이지만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사모펀드나 특정금전신탁의 투자자를 왜 공개하지 않느냐는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간의 ‘은밀한 관계’가 있다고 해도 자본시장법상 이들 투자자는 공개할 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아시아 최대 사모투자펀드(PEF)인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 인수펀드에 투자한 기관을 밝히지 않는 것은 법으로 보장된 겁니다. 대기업 임원 출신 자녀가 설립한 사모투자펀드에 투자한 이른바 ‘전주’(錢主)들이 장차관으로 채워졌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그게 범죄가 되지는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투자자를 감추고 수익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PEF나 특정금전신탁을 운영하는 금융사의 역할입니다.
이런 형편에 이 지사를 향해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의 실소유자가 누군지 밝히지 않는다며 ‘화천대유는 누구 것입니까’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 지사를 향해 법을 어기라는 말과 다름 없습니다. 이 지사의 수사 공개의뢰가 ‘내 입으로는 말 못하니 수사를 통해 투자자를 밝히면 그만’이라는 강수로 읽히는 이유입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정치권의 경제이슈를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