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은 이번에 100번째를 맞아 특별한 광화문글판을 선보였다. 바로 방탄소년단(BTS)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인 ‘[춤]만큼은 마음 가는 대로, 허락은 필요 없어’라는 문안을 넣은 것이다. 지난해 BTS의 노래 가사를 넣은 ‘광화문글판 특별편’을 두 차례 선보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BTS가 광화문글판을 위해 직접 문안을 만들었다. 기존보다 더욱 큰 사이즈로 제작된 100번째 광화문글판은 교보생명빌딩 외벽을 화려하게 뒤덮었다. 100번째 광화문글판 게시글은 현재 교보생명 광화문글판 트위터 계정과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1,700만 건이 넘는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고 리트윗 수도 20만 건에 이른다.
교보생명 광화문글판과 BTS의 만남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를 선사하자는 공감대가 이뤄지며 성사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어졌지만 고단한 하루 속에서도 허락받지 않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자는 의미를 담았다. BTS 멤버들은 “저희는 누군가에게 허락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춤’이라고 생각했다”며 “각자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을 찾아 문안 속 밑줄에 여러분만의 자유를 표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100번째를 맞은 광화문 글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1년부터였다. 초기에는 직설적인 메시지가 담긴 표어와 격언이 주였다. 시작은 1991년 1월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라는 다소 딱딱한 격언이었다.
그러다 1998년 2월 고은 시인의 작품 ‘낯선 곳’에서 가져온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문안이 걸리면서 광화문글판에 시심(詩心)이 녹아 들었고, 회자되기 시작했다.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지난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절망과 고통을 겪는 국민들이 많아지면서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외벽 글판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들에게 위안을 주는 글판으로 운영하자”고 말했다.
지금까지 동서고금 현인과 시인 등 70여 명의 작품이 100편의 광화문글판으로 재탄생했다. 광화문글판의 문안은 쉽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1년에 네 번, 계절의 변화에 발맞춰 새 옷을 입는 광화문글판의 문구는 시인·소설가·카피라이터·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와 시민 참여를 통해 선정된다. 광화문글판 문안선정위원회는 2000년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글판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이름 없는 현판에서 지금의 ‘광화문글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광화문글판은 시민들의 가슴에 남는 명작도 많이 남겼다. 지난해 교보생명은 광화문글판 30년을 기념해 ‘삶의 한 문장, 내 마음 속 광화문글판은?’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시민 1만 5,600여 명이 투표에 참여한 결과 시민들은 가장 사랑한 광화문글판으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2012년 봄편)’를 꼽았다. 다음으로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정현종 ‘방문객’, 2011년 여름편)’가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광화문글판의 공감과 위로의 가치는 학술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영림 동국대 불교아동보육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종교교육학연구’에 발표한 논문 ‘외상 후 성장 관점에서 본 광화문글판과 보왕삼매론의 상담적 함의’를 통해 광화문글판을 ‘역경을 통한 성장’ 측면에서 조명했다. 이 교수는 “사람들이 깊게 공감하고 위로받았던 광화문글판의 글귀를 통해 현대인들이 어떻게 삶에서 겪는 스트레스나 심리적 상처를 딛고 성장하는지 투영된다”고 분석했다.
2010년에도 중앙대 이명천 교수팀이 ‘옥외광고학연구’ 가을호에 광화문글판을 주제로 연구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교수팀은 논문에서 공익적 주제의 옥외광고에 문학 콘텐츠를 메시지로 활용한 것을 광화문글판의 차별화된 특징으로 꼽으며 “수십 년간 지속해온 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실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