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날고 자율주행 시동 거는데…'아날로그법'에 혁신 제자리

[구시대 유물법 이제는 바꿔야]
<중> 신산업 발목 잡는 붉은 깃발법
2005년 제정된 위치정보법으로
드론 등 신산업 서비스개발 난항
전자금융거래법 망분리도 韓유일
저작권법탓 데이터 사본 못만들어
관련법 완화안은 국회서 공회전만

/이미지투데이

“아날로그 시대에 만들어진 기존 법으로 디지털 시대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나왔는데 기존에 있는 규제법을 한 글자도 고치지 않고 사전 규제하고 있는 것이죠.”


정보기술(IT) 관련법 전문가인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모바일시대에 새로 등장한 플랫폼 등 현행 법이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을 기존 잣대를 가지고 확대 적용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드론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주행하는 시대, 빅데이터에 기반한 인공지능(AI) 기술 등 디지털 산업혁명이 본격화하고 있는데 아날로그 시대에 만들어진 법·제도는 시간을 역행하고 있다. 기업들이 새로운 혁신 기술을 선보여도 아날로그 시대에 만들어진 법제가 곳곳에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전 세계가 신산업 육성을 위해 각축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구시대 유물법을 개정하거나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운용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및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제정 취지에 맞지 않는 법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지난 2005년 처음 제정된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다. 위치정보법은 이동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물류·보안·상거래 등에 위치 정보를 이용하는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만들어졌다. 위치 정보 기반 서비스에 신고제를 도입하고 위치 정보 수집·제공 시 익명화된 개인 정보나 사물 정보까지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해외에서도 위치 정보 보호와 관련한 별도의 법제를 두지 않아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최근에는 자율주행차, 드론 등 여러 신산업에서 위치 정보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지면서 법 개정 요구가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이 사업 초기 출발선부터 서비스 개발 등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만큼 관련법을 아예 폐지해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전자금융거래법상 망 분리 제도 역시 한국만 있는 규제법이다. 현행 전자금융 감독 규정에 따르면 개인 정보 보안 등을 위해 기업 내부에서 사용하는 업무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서로 분리 운영해야 한다. ICT 산업 초기인 과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모든 데이터를 한 곳에 모으는 클라우드 기술이 활성화됐지만 관련법을 어기지 않으려면 개발자들은 업무 효율성이 떨어짐에도 다수의 PC를 분리 운영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경직적으로 운영되는 저작권법도 AI 산업 발전의 걸림돌이다. AI 기술 발전의 핵심 요소인 빅데이터는 방대한 양의 학습 데이터를 복제하고 전송하는 과정이 필수다. 문제는 AI 핵심 기술인 머신러닝 및 딥러닝 학습 과정에 포함된 데이터 사본을 만드는 과정이 현행법상 저작권 침해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AI 학습에 포함된 콘텐츠 저작자가 저작권 침해라고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데다 AI가 텍스트·사진·음성·동영상 같은 비정형 데이터를 스스로 인식하고 학습하는 과정도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저작권법을 개정해 AI가 학습하기 위해 데이터 사본을 만드는 것을 허용한 반면 한국은 관련 법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다.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조건과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는 방향으로 법을 손질하고 AI 학습이 적법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신산업의 발목을 잡는 붉은 깃발법이나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인 위치 정보 사업 진입 규제를 기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하는 내용의 위치정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윤관석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금융회사와 전자 금융업자 등의 금융 보안 거버넌스 강화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망 분리 규제 완화를 위해 전자 금융업자의 사전 책임보다 사후 책임을 강하게 묻겠다는 취지다. 도종환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저작권법 전부 개정법률안은 AI·빅데이터 기술 등의 활용 시 저작권 침해 문제를 줄이는 내용 및 AI·빅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저작권 침해 문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관련법들은 기득권을 주장하는 업계 이해관계와 정치권의 정쟁 때문에 외면 받으며1년 가까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공회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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