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000210)그룹(옛 대림그룹)이 미국의 대형 화학회사인 크레이튼(Kraton)을 약 2조 원에 인수한다. 크레이튼은 DL그룹이 지난 2019년 카리플렉스(합성수지고무) 사업부를 인수했던 회사로 이번에 회사 경영권까지 넘기게 된 셈이다.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DL그룹의 석유화학 자회사인 DL케미칼이 크레이튼 경영권 지분을 기업가치(EV) 기준 25억 달러(한화 2조 9,500억 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이는 부채를 포함한 금액으로 DL케미칼의 실제 인수가는 16억 달러(약 1조 8,800억)로 책정됐다고 회사측은 전했다. DL케미칼은 크레이튼에 약 5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크레이튼 측 매각 자문은 JP모건이 맡았으며 DL그룹 측 인수자문은 골드만삭스가 담당했다.
미국 휴스턴에 본사를 둔 크레이튼은 고부가가치 기능성 제품을 제조하는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이다. 1950년대 쉘(Shell)사의 화학 사업부문이 모태로 지난 2001년 분리돼 사모펀드를 주인으로 맞은 이후 2009년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세계 최대 첨단 열가소성 탄성중합체(SBC: Styrenic Block Copolymers)를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 50여년 간 글로벌 화학제품 시장을 개척해온 전문 기업이다. 이 회사에서 생산한 화학제품은 접착제와 라텍스, 도료, 윤활제, 의료, 포장재 등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미국과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브라질, 일본 등에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상장사인 크레이튼의 지분 전량을 인수하기 위해 DL그룹은 대주주 보유 지분을 매입하면서 동시에 소액 주주들이 들고 있는 상장 주식도 모두 사들이기로 했다. 소액주주들은 주당 46달러 50센트에 보유 주식을 모두 DL그룹에 넘길 예정이다. 26일 종가 기준 크레이튼의 주가는 41달러 51센트로 시가총액은 13억 달러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번 거래가 마무리되면 크레이튼은 뉴욕증시에서 상장 폐지된다.
DL그룹은 지난 2019년 대림산업을 통해 크레이튼의 카리플렉스 사업부를 5억 3,000만 달러(약 6,200억 원)에 인수한 바 있다. 카리플렉스 사업부는 수술용 장갑과 주사용기 고무마개 등 의료용 소재에 쓰이는 합성고무와 라텍스를 생산하고 있다. DL그룹은 당시 카리플렉스 사업부의 브라질 생산시설과 원천기술, 영업권과 함께 생산·연구·판매·인력을 인수했다. 이번에 인수 주체로 나선 DL케미칼은 대림산업에서 석유화학사업부가 물적분할한 법인으로 크레이튼을 100% 자회사로 두게 된다.
크레이튼 인수는 DL그룹 82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M&A 거래다. DL그룹은 지난 5월 지주회사 DL의 유상증자를 끝으로 이해욱 회장→대림(옛 대림코퍼레이션)→DL→DL케미칼→카리플렉스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DL그룹은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준비해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편이 완성되면 DL그룹이 그동안 소극적이던 석유화학 부문 투자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견돼 왔다" 면서 "DL그룹은 카리플렉스 사업부 인수 직후부터 크레이튼 회사 전체를 인수하는 방안을 고민해왔다"고 설명했다.
DL그룹은 최근 유상증자를 통해 DL케미칼에 4,500억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DL케미칼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9,200억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