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고에도 옥살이…'기승전 사업주 처벌법' 대폭 수정해야"

■ 3각파고 규제에 숨죽인 기업
<상>산업현장 혼란 키우는 중대재해법
경영책임자·의무조항 광범위 "직원뽑기 무서울 지경"
하청 사고도 원청이 책임…산재 놓고 갈등 커질 수도
"법 자체가 추상적…시행 늦추고 과도한 처벌 개정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라는 것인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건축설비 회사인 성보엔지니어링의 정달홍 대표는 내년 초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아무런 준비를 못하고 있다고 했다. 법 제정 이후 정부 부처가 마련한 시행령도 법 못지않게 모호해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대표는 “근로자의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고에 대해 사업주를 처벌하겠다는 게 중대재해처벌법”이라며 “그 넓은 건설 현장 전체에 CCTV를 설치해 근로 현장을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답답해했다. 그는 “사고만 나면 범법자가 될 판이니 사업 확장을 위해 직원 뽑기조차 무서울 지경”이라고도 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각종 규제 법안 가운데 기업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어떻게 대비해야 처벌을 피할 수 있는지 규정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포괄적이고 모호한 경영 책임자의 범위와 의무다. 경영 책임자가 회사의 대표를 의미하는 것인지, 부사장 내지 전무급까지 포괄하는 것인지 알 수 없고 ‘안전관리보건체계’라고 규정된 의무 조항도 의미가 너무 불명확하고 광범위하다. 의무는 모호한데 사고 발생 시 경영 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의무 조항이 불명확하니 안전관리와 교육에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경미한 재해라도 발생하면 책임을 피할 수 없어 회사의 대표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미한 재해라면 징역형보다는 벌금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는 하지만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사업하다 감옥 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하다”고 전했다.


재해의 범위도 모호하다. 발병의 종류만 있을 뿐 중증도 기준이 없어 수일 내 치료가 가능한 경미한 질병도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할 우려가 있다. 사실상 모든 재해를 사업주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안전보건법과 달리 안전 규정 준수 의무 주체가 도급인(원청)으로 돼 있다. 하청 업체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까지 원청에 책임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도장업을 하는 중소기업 대표 A 씨는 “현재로서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것 외에 달리 대비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작업 현장에서의 사고는 근로자와 사업주가 함께 예방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사안인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예방 방안 없이 오로지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A 씨는 “만일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 과실 유무, 사고의 정도와 관계없이 사업주는 형사처벌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자칫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며 “중소기업은 대표가 징역을 살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을 텐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산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CCTV 설치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사업장의 사정에 따라 CCTV 설치가 어려운 경우가 많고 개인 정보 내지 사생활 침해라는 노조의 반대도 많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일부 기업들은 CCTV 설치 등을 위한 재해 예방 예산까지 별도로 편성했지만 노조의 반대로 집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사고 발생 시 산업재해보상보험 신청을 위한 재해 인정 여부를 두고 노사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결국 근로자의 피해만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에는 업무 관련성 여부가 불명확한 사고성 재해에 대해서도 근로자가 산재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사업주가 산재 인정을 묵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이를 인정하지 않고 불복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산재 인정 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추정돼 자칫 사업주와 법인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는 산재보험금을 받지 못하거나 불복 소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여러 문제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 시기를 늦추고 독소 조항을 대거 수정하는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승전 처벌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며 “법 자체가 추상적이고 모호한데 처벌 강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해 이대로 시행하면 재해 예방이라는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중견·중소기업과 근로자의 피해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에서 “이번 시행령은 사업주가 안전보건 관계 법령 전반을 준수하도록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사업주에 과도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은 재해 예방을 어렵게 만들 수 있으므로 더욱 근본적으로는 과도한 처벌 등을 규정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손경식(왼쪽 다섯 번째) 경총 회장, 권태신(〃 세 번째) 전경련 부회장, 우태희(〃 네 번째) 대한상의 부회장, 김기문(〃 여섯 번째) 중기중앙회 회장 등 경제 단체들이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의 보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경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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