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진영을 뛰어넘는 ‘통 큰 정치’를 보고 싶다

獨총선서 與野 ‘메르켈 계승’ 한목소리
균형·타협의 대연정으로 강국 일궈내
국민통합 이뤄야 노동·규제개혁 가능
분열·갈등 벗어나 미래비전 제시할때


독일에서는 총선이 끝나면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더 바빠진다. 과반을 확보하는 정당이 없어 연정(聯政)을 맺기 위한 복잡한 수 싸움에 돌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26일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한 사회민주당(SPD)도 25.7%의 득표율에 머물러 최소 2개 정당과 손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사민당은 당장 녹색당·자유민주당과 함께 ‘신호등 연정’을 추진하고 나섰다. 세 당을 상징하는 색깔이 빨강(사민당)·초록(녹색당)·노랑(자민당)인 신호등과 같다고 붙여진 용어다. ‘연정 국가’로 불리는 독일에서는 각 정당이 이념과 당파를 떠나 3~5개월의 치열한 협상을 거쳐 수백 쪽 분량의 연정 합의문을 발표한다. 2005년 성사된 대연정 당시의 합의문은 200쪽에 달했다. 이를 통해 견제와 균형·타협의 정신으로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낸다. 연정이든 협력 정치든 대화와 타협을 전제로 삼는 의회민주주의가 오늘의 경제 부국을 일궈낸 든든한 토대임은 물론이다.


이번 총선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여야 할 것 없이 앙겔라 메르켈 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야당인 사민당의 총리 후보 올라프 숄츠는 유세 기간 내내 “메르켈 총리의 뜻을 받들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메르켈 정부의 부총리 겸 재무장관으로 일했던 자신이야말로 경제정책의 책임자로서 정통성을 갖췄다는 얘기다. 중도좌파 정당인 사민당이 우파 성향의 슐츠를 내세워 메르켈에 기대는 중도층의 표심을 잡는 데 성공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메르켈 총리는 2005년부터 16년 동안 독일뿐 아니라 유럽, 나아가 세계의 지도자로서 활약했다. 그는 재임 기간 중 4명의 미국 대통령과 5명의 영국 총리, 9명의 이탈리아 총리를 만났다. 메르켈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세계의 정치 지도자라는 칭송까지 받았다.


독일은 메르켈 취임 당시만 해도 과도한 복지와 노조 입김에 짓눌려 높은 실업률, 재정 적자 악화에 시달렸다. 메르켈은 전임 게르하르트 슈뢰더 사민당 정부의 노동 개혁 정책인 ‘어젠다 2010’을 이어받아 규제를 완화하고, 고용·실업 관련 제도를 손질했다. 파견 근로자 범위를 확대하고, 사회보험의 사용자 부담을 낮춘 것은 대표적 사례다. 메르켈 이전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은 그가 총리에 취임한 이후 경제 대국으로 변모했다. 2005년 12%에 육박했던 실업률은 올해 6%로 떨어졌고 경제도 활력을 되찾았다. “10년 안에 유럽 최대 경제국의 지위를 탈환하겠다”는 취임 초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에 대한 독일 국민의 자부심이 마지막까지 80%라는 높은 지지율로 이어진 것이다.


임기 말까지 포용과 통합의 정신으로 일관한 메르켈의 리더십은 정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우리 정치권에서 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현 정권은 이념에 얽매인 오기와 독선적인 정책이 국민들을 불안하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취임 전보다 2배나 오른 집값과 끝없이 추락하는 취업률은 정부를 믿고 따르던 평범한 국민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있다.


노동조합을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던 사민당 정부는 2003년 ‘하르츠 개혁’을 단행해 근로자들을 설득하고 고용 유연성을 확보해 근본적인 경제 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반발하는 노동계를 설득해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데 오히려 좌파 정부가 더 유리하다는 측면을 활용한 것이다.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한 우리도 마찬가지다. 당파성에서 벗어나 국민적 통합을 구축해야 우리 사회의 숙원인 노동 개혁과 규제 개혁도 가능한 법이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을 떠나 국익을 앞세우고 합의와 타협을 통해 미래 비전과 전략을 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자면 집권 세력부터 통 큰 양보를 통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국익과 미래를 바라봐야 한다. 이제라도 대통합이라는 초심이 지켜지고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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