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나 불편이 없는 ‘투어의 천국’입니다.”
한국 남자골프의 ‘선구자’ 최경주(51·SK텔레콤)는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의 위상이 어떤지 말해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30일 경기 여주의 페럼 클럽(파72)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0억 원) 1라운드에서 최경주는 3오버파 75타 공동 106위로 출발했지만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최경주는 지난 27일 챔피언스 투어 퓨어인슈어런스 챔피언십에서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시니어 무대 우승을 일궈낸 직후 이 대회에 출전했다. 그는 “19년 전인 2002년 PGA 정규투어 첫 우승(통산 8승) 때나 챔피언스 우승 때나 감동은 똑같았다”고 했다.
챔피언스 투어는 한국인 정규 멤버가 없었던 터라 50세 이상 선수가 뛴다는 것 이외에 투어 환경이나 운영 등에 대해서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경주는 “선수들이 챔피언스 투어에 대해 농담으로 ‘ATM(자동현금인출기) 투어’라고 부른다. ‘아빠 월급 타러 갔다 올게’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제가 느끼기에는 여유가 있고 서로 격려해주며 다들 좋은 친구 같은 분위기”라고 했다.
최경주는 “스트레스가 덜하고 연습 라운드 때는 앞 조가 조금 늦으면 카트를 타고 가서 다른 홀을 치고 와도 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천국은 고통도 없고 기쁨이 충만하다고 하지 않느냐. 챔피언스 투어가 그렇다”며 “식사 대접도 아주 좋다. 처음에는 황당하기도 했는데, ‘22년 PGA 투어 생활에 이런 축복이 있으려고 그동안 그 고생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여유가 느껴지지만 그래도 승부는 치열하다고 했다. 그는 “대충해서는 우승할 수 없다. ‘탱자탱자’ 노는 투어가 아니다. 저도 지난해 처음 2개 대회를 뛰어본 후 재정비해서 우승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10년 정도 챔피언스 투어를 뛰면서 매년 1승 이상씩 하는 게 목표다. 조만간 2승 소식도 전하도록 몸과 컨디션 관리를 잘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1999년 한국인 최초로 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해 한국인 최초 PGA 투어 우승자, 아시아 선수 최다승 등 개척자의 삶을 살아온 최경주는 “많은 분들이 저를 믿고 응원을 해준 덕분에 지금까지 도전을 이어올 수 있었다”며 “반대로 제가 잘함으로써 남을 도울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힘이 들더라도 극복해나가겠다. 후배들의 길잡이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개막 이틀 전 귀국해 시차와 컨디션 조절 시간도 부족했던 최경주는 이날 버디 2개, 보기 5개를 묶어 3오버파를 기록했다. 실제로는 2오버파를 쳤지만 16번 홀(파3)의 파를 보기로 잘못 적어내 1타를 손해봤다. 기자회견에 앞서 올 시즌 신인상 포인트 1위를 달리고 있는 김동은(23)이 선수 대표로 최경주에게 우승 축하 케이크를 전달하기도 했다.
한편 김영수(32)가 보기 없이 버디만 8개를 골라내 단독 선두로 나섰다. 8언더파 64타는 종전 기록을 2타 줄인 코스 레코드다. 김영수는 “최근 샷과 퍼팅이 좋다”고 했다. 김동민(22)이 7언더파 2위, 통산 5승의 김비오(31)와 권오상(26)이 6언더파 공동 3위에 자리했다. 디펜딩 챔피언 이창우(27)는 1언더파 공동 47위로 1라운드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