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 전 대법관이 지난해 7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만배씨를 수차례 만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권 대법관은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7대 5로 무죄 판단이 내려질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성남시 대장동 개발의 가장 큰 특혜를 본 김씨가 권 전 대법관과 만나 이 지사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전주혜 의원 국민의힘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출입기록에 따르면 김 씨는 2019년 7월 16일부터 지난해 8월 21일까지 총 8회 권 전 대법관을 방문했다. 특히 지난해 6월 15일 이 지사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회부되고 난 다음날인 6월 16일에도 김 씨는 권 전 대법관을 방문했다. 두 사람이 만난 지 이틀 후인 6월 18일 대법관들은 첫 심리를 열고 이 지사 사건에 대해 논의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당시 대법원 전합 심리에서 권 전 대법관은 주심 대법관이 아니었지만, ‘캐스팅보트’ 이상의 역할을 하며 무죄 취지의 법리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 전 대법관이 이 지사에 대한 전합에서 무죄 취지로 별개 의견을 냈고 회의를 거쳐 권 전 대법관의 별개 의견이 다수의견이 돼 전합 판결문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대법원 출입기록에 따르면 한 달 뒤인 지난해 7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판결 다음 날인 17일 김 씨는 대법원에 찾아와 권 전 대법관을 방문했다. 이뿐만 아니라 김 씨는 지난해 3월 5일, 5월 8일과 26일 권 전 대법관을 방문했다. 또 김 씨가 지난해 6월 9일 권 전 대법관을 방문한 지 6일 뒤인 6월 15일 대법원은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이 지사의 정치 생명이 오갔던 시기를 전후해 김씨가 대법원까지 수차례 찾아가 김 전 대법관과 접견한 것이다.
심지어 김씨는 전합 판결 이후 지난해 8월 5일, 또 21일에 다시 권 전 대법관을 방문했다. 권 전 대법관은 김씨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지 한 달도 안 된 9월 8일 퇴임한 뒤 화천대유 고문을 맡았다. 그는 월 1,500만 원 정도의 고문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대법관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 중인 사실이 보도되자 사임 의사를 밝혔다.
권 전 대법관과 판결 전후로 수차례 만난 기록을 볼 때 김씨가 이 지사가 무죄를 받는 데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 씨는 성남시장을 지내던 이 지사와 인터뷰 기사를 출고한 뒤 화천대유를 설립해 일각으로부터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전주혜 의원은 “김만배 씨의 방문 일자는 이재명 지사 사건의 전합 회부일, 선고일과 밀접하게 연관돼있어 로비라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다”며 “민주당은 특검을 하루빨리 수용하여 초유의 재판거래 의혹을 밝히는데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