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겠다’ 하면 탐심이요, ‘공부가 왜 안 되나?’ 하면 진심이요, ‘공부가 잘된다’ 하면 치심이니, 너무 하겠다고 하지 말고 안 하지만 않으면 됩니다.”(백성욱 박사 법문집 공부하는 법 中)
승려이자 기자, 독립운동가, 한국 최초의 독일 철학박사로 활동하다 해방 후에는 내무부 장관과 동국대 총장을 역임한 백성욱(1897~1981) 박사의 전집이 처음으로 출간됐다. 전집은 그동안 파편적으로 존재하던 백 박사의 글과 말, 강의를 2년 9개월 간 수집·정리한 결과물이다. 그의 제자인 김강유 김영사 회장이 백 박사와 인연이 있던 이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하고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수집했다.
백 박사는 한 사람의 삶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채로운 삶을 살아왔지만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나 연구·기록 역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가 강의한 '금강경 강화'와 제자들이 전하는 일화 및 법문 일부가 책으로 남아 있고, 불교학 연구자들이 그의 금강산 수행 시절을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총 6권으로 구성된 전집은 백 박사의 금강경 강의와 인문학 강의, 법문집, 논문·시·에세이 등으로 구성된 문집, 일화 등이 담긴 회고록 등으로 구성됐다. 그의 강의와 법문이 기록된 테이프를 디지털로 전환해 수차례 청취하는 과정을 거쳤고, 역사 자료와 도서관 문헌 등을 찾아 복원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백 박사의 출생과 성장, 청년기의 독립운동, 유럽 유학시절, 금강산 수도 시절, 동국대 진흥을 비롯한 사회활동이 새롭게 확인됐다.
백 박사는 화려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3세에는 아버지를, 5세에는 어머니를 여윈 뒤 12살에 출가해 승려의 삶을 살았다. 20대에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명을 받아 탑골공원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배포했으며,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1년에는 독립운동가 민영환의 도움으로 프랑스로 넘어갔고, 한국 최초로 독일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신문과 잡지에 시와 논문, 에세이 등을 기고하며 각종 토론회와 법회에서 강의하다 돌연 금강산으로 들어가 수행해 매진했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정권에서 제4대 내무부 장관과 한국광업진흥주식회사 사장을 지내기도 했고, 한국 전쟁 중에는 동국대학교 제2대 총장에 취임해 '금강삼매경론' '화엄경' 등을 가르쳤다. 그의 강의는 일반 대중들에게 금강경을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영사는 "한 사람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나도 극적인 변화와 기록들, 비범한 통찰과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전집은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의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지침이 되어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