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 가계부채 경고 해 온 최연소 금통위원의 선택은?

만 50세 박기영 금통위원 지난 6일 공식 취임
'빚으로 지은 집' 번역 등으로 가계부채 경고
취임사서 "통화정책 관점서 불평등 문제 분석"
매파 다수지만 이달 금통위는 동결 전망 우세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가늠할 수 있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8월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25%포인트(P) 올리면서 33개월 만에 인상에 나선 이후 처음 열리는 통방회의인 만큼 주목도가 큽니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시작됐다고 선언하면서 이미 연내 추가 인상은 확실해진 가운데 금통위가 바로 금리를 올리며 속도를 낼지 한숨 고른 뒤 발걸음을 옮길 것인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입니다. 인플레이션 압력 확대, 가계부채 증가 지속, 코로나 장기화와 자영업 충격, 미국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중국 경기회복 둔화 등 국내외 변수가 쏟아지고 있는 만큼 한은의 판단과 선택이 중요한 순간입니다.



박기영 금융통화위원 /사진제공=한은

이런 시기에 새로 취임한 박기영 금통위원에게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박 위원은 금융위원장으로 임명돼 자리를 비운 고승범 전 금통위원의 후임으로 2023년 4월까지 남은 임기를 채울 예정입니다. 1971년생으로 2014년 임명된 함준호 전 금통위원과 함께 역대 최연소 금통위원입니다. 금통위원으로 취임한 지 불과 6일 만에 기준금리를 결정해야 되기 때문에 국내외 경제 상황에 대한 한은의 보고를 받고 내용을 파악하기도 시간이 빠듯합니다.


박 위원은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묵언 기간에 취임해 본인이 가진 통화정책 성향에 대해 언급할 수 없습니다. 금통위원은 기준금리 결정 회의 일주일 전부터 통화정책 방향이나 이를 시사할 수 있는 금융·경제에 대한 언급을 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박 위원이 매파(통화 긴축 선호)인지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인지를 짐작하기 위해 과거 쓴 논문이나 번역서 등을 참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도가 높은 것이 박 위원이 번역해 2014년 출간된 책 ‘빚으로 지은 집(가계부채는 왜 위험한가)’입니다.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와 아미르 수피 시카고대 교수가 공저한 이 책은 가계부채가 세계 경제를 지속적으로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모든 심각한 경기 불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가계부채 급증이 선행되고 있다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면 소비 지출이 감소해 장기 불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거품 붕괴로 인한 집값 폭락은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저소득층에 가장 큰 타격을 준다는 것입니다.



시중 주요 은행들이 전세대출과 집단대출 등 가계대출 줄이기에 속속 동참하면서 대출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4일 서울 시내 한 은행 외벽에 대출 안내문이 붙여있다./권욱 기자 2021.10.4

박 위원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부채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2014년 당시 가계신용이 1,085조 3,000억 원이었던 상황에서도 부채에 대한 경고 목소리를 낸 것입니다. 이후 가계신용은 더욱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불과 7년 만인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1,805조 9,000억 원까지 급증한 상태입니다. 아티프 미안 교수는 박 위원의 박사 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합니다.


박 위원 자신도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 많은 연구를 해왔습니다. 2018년에는 김수현 당시 한은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과 함께 ‘가계부채의 분산과 거시경제적 시사점’이라는 연구로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고소득층이 부동산 투자로 가계부채 급증을 주도하는 반면 저소득층은 소비를 위해 차입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가계부채 증가가 경제 안정성을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최근 가계부채 증가가 상환능력이 있는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목소리가 있는데 박 위원은 고소득층의 가계부채 증가에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박 위원은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빚으로 지은 집’은 지도교수가 쓴 책을 번역한 것이고, 자신은 데이터를 보고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미루어 짐작해보면 박 위원은 가계부채 문제를 경고하면서 코로나19 초저금리 상황에서 가장 먼저 기준금리 인상 의견을 내 매파적 색채를 드러낸 고승범 금융위원장과 비슷한 성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 위원이 지난 6일 내놓은 취임사에도 “코로나19 상황과도 맞물리며 최근에는 중앙은행의 업무 영역이 아니라 생각했던 경제적 불평등 문제도 통화정책의 관점에서 분석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자산시장 과열을 지적하면서 재정정책, 거시건전성정책과의 정책 조합도 강조했습니다.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대출 규제나 주택공급 등 각종 대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최근 한은의 정책 방향과 맞닿아 있는 내용입니다.



금융통화위원회 / 사진제공=한은

박 위원 취임으로 금통위는 7명 체제가 다시 완성됐습니다. 고 위원이 빠진 지난 8월 금통위는 6명 가운데 주상영 위원을 제외한 5명이 기준금리 인상 의견을 냈습니다. 박 위원마저 매파인 것으로 확인될 경우에는 매파 6명과 비둘기파 1명의 구도가 형성됩니다. 고 위원장이 이끄는 금융위원회가 이달 중순 가계부채 추가 대책을 내놓기로 한 만큼 이와 맞춰 기준금리를 바로 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다만 이번에는 기준금리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좀 더 많습니다. 8월 인상 이후 나타나는 각종 경제 지표를 확인한 뒤 11월 25일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올려도 늦지 않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 테이퍼링 등으로 금융시장 변동성도 커졌습니다. 어찌 됐든 코로나19 확진자 수도 매일 수천 명씩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주열 총재가 지난 8월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경기 개선 정도에 맞춰 점진적으로 조정해나가겠다고 했는데 ‘점진적 조정’의 의미를 “서두르진 않겠지만 지체하지도 않겠다”고 말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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