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가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됐습니다. 지난 2010년 성남시장 당선 이후 1%대 지지율을 받으며 대선 후보로 처음 언급된 이후 6년 만입니다. 축하와 환호를 받아야 하지만 대선후보로 선출된지 2시간여 만에 2위 주자 이낙연 전 대표 측은 경선 무효표 처리를 당 선관위에 공식 제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실상 경선 결과를 승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사단은 이 후보가 지역별 순회 경선과 1~3차 선거인단 투표(슈퍼위크)에서 누적 득표율 50.29%로 간신히 과반을 달성해서 벌어졌습니다. 사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라던 캠프 내 판단과 달리 24만8,000여명이 참여한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 전 대표가 62.37%를 차지, 이 후보(28.3%)를 압도하며 상황이 묘하게 바뀌었습니다.
앞서 민주당 선관위는 특별당규 59조에 따라 전체 유효투표 수에 정세균 전 총리와 김두관 의원이 얻은 표를 제외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습니다. 59조 1항은 ‘경선 과정에서 후보자가 사퇴하는 때에는 해당 후보자에 대한 투표는 무효로 처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이 전대표 측은 “후보 사퇴했을 때 그 사퇴한 후보에 대한 투표는 무효라는 이야기다. 이것이 마치 여태까지 모든 득표를 무효로 하는 것으로 과잉해석”이라며 “이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나중에 선거결과에 따라 엄청난 후폭풍이 올 수 있다”고 경고 한 바 있습니다.
이미 ‘애프터경선’ ‘경선중단’등을 요구한 이 전 대표 측이 경선을 불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 배경입니다. 경선 중반 이 전 대표 캠프 총괄본부장인 박광온 의원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조치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고 보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 전 대표 측은 이 후보의 득표가 과반에 못 미치는 48.37%가 되면서 결선 투표가 진행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전 대표 측 계산과 달리 공개된 이 후보의 득표수와 무효표를 고려해도 49.31%의 득표율로 과반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불안한 예감이 현실이 돼버린 상황. 민주당 내홍은 깊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11일 오전 송영길 당 대표와 이 후보는 대전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집권여당 대선후보 공식 일정을 시작합니다. 후보 수락연설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송 대표는 이 후보에게 당선증까지 교부했습니다. 이상민 선거관리위원장은 “이재명 후보는 당규에 따라 선출됐다. 중대 하자가 없는 한 안 바뀐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날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서 이재명 지사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축하한다. 경선 절차가 원만하게 진행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습니다. 그만큼 경선결과가 뒤집혀 결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굉장히 낮아보입니다. 다만 이낙연 전 대표를 포함한 지지층을 흡수해 ‘원팀’을 구축할 수 있냐는 점은 의문으로 남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3차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 전 대표가 62.37%로 압도적인 득표를 했다는 점도 이 후보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이 후보에게 불리한 여론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후보로 확정된 이후 대장동 공세는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부에서도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일각에서는 2002년 대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흔든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이야기까지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이 후보는 노 전 대통령 처럼 간난신고를 뚫고 내년 3월9일 승리할 수 있을까요.
이 지사가 처음 ‘사회적 감수성’에 눈을 뜨게 해준 이가 노 전 대통령이라는 점은 운명의 장난과도 같습니다. 이 후보가 산골 출신 소년공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상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보통 힘든정도가 아니라 후각을 잃고 팔은 굽었습니다.
검정고시 단과반 학원에 다닐 수 없을 지경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극한의 삶에서 대학에 입학했지만 80년 시대는 군부독재정권이 민주주의를 유린하던 시기였습니다. 감옥에 가 있는 친구들과 경찰에 쫓겨 다니는 후배들 속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이 후보는 ‘돼지와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난 8월 출간된 '인간 이재명'에는 이런 이 후보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준 게 한 변호사의 특강이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특강 강사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주변에서는 다들 1년, 아니 하다못해 6개월 만이라도 현직에 나가라고 권했다. 6개월만 판검사를 해도 전관예우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면 사무실 열 비용은 마련할 수 있다며 그를 걱정해줬다. 고마웠지만 그는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노동인권 변호사의 삶의 첫 출발을 조영래 변호사가 지원했다는 점도 운명같습니다.
다만 이 후보의 ‘대장동’은 그 때 이미 잉태됐습니다. 그를 첫번째 전과자로 만든 ‘파크뷰 특혜사건’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장동 의혹의 첫 출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파크뷰 특혜사건은 아파트를 지을 수 없어 포스코개발이 281억원의 위약금을 물면서 포기한 땅을 소규모 건설업자 홍 모씨가 100억 원의 계약금을 내고 매입한 다음 용도 변경을 추진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업무시설이 들어설 자리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짓는 건설업자에게 엄청난 차익을 안겨주는 범죄행위를 파헤쳐 가던 이 후보는 이 사건의 배후에 토건업자와 정관계, 검찰, 언론으로 이어지는 막강한 커넥션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취재중이던 KBS피디가 당시 성남시장에게 파크뷰 담당 검사라고 하는 전화통화 자리에 이 후보도 같이 있으면서 검사사칭 공동정범이 됐습니다.
이후 시민운동 역시 활발히 활동한 이 후보는 성남 구도심 지역의 유일한 대학병원인 인하병원의 폐업에 따라 시립병원 설립추진위원회도 참여합니다. 이 후보는 단 3주만에 주민발의자 1만8,595명을 모아 ‘주민발의 조례’를 성남시에 접수했습니다. 그러나 성남시의회에 상정 47초만에 심의보류가 선포되었습니다.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성남시의회가 사실상 부결처리해 버린 셈입니다. 이 때 이 후보는 “우리가 시장합시다. 저 쓰레기 같은 놈들 싹 몰아내고, 병원 만듭시다”라며 처음 정치참여를 결심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취임 직후 '성남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돈이 없자 도둑질 당한 시민의 돈을 되찾아오기로 했습니다. 대장동 사건의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한 경제지가 실시한 50개 대기업과 50대 중소기업, 총 100개의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위해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단체장’조사에서 이 후보는 1위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성남시장 시절에도 이 후보는 특혜논란이 두려울만도 했지만 방치된 공공용지와 의료용지에 대기업 사옥과 연구소를 과감하게 유치해 현대중공업 종합연구개발센터와 두산그룹 사옥이 성남에 들어올 수 있게 했습니다. 이 후보가 과감하게 기업을 유치하고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청렴의 힘이었다고 평가받습니다.
대장동 특혜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가운데서도 이 후보의 지지율이 굳건한 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의혹의 본질은 이 후보가 평생 명운을 걸고 싸워온 토건기득권 세력에 있습니다. 물론 사업 당시의 성남시장으로서 이 후보의 책임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과반확보에도 시비가 걸릴 만큼 경선 득표율에도 이상징후가 발생했을 겁니다.
이 어려움을 이 후보는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 지사가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화장실 청소를 독차지 했던 산골 초등학교 시절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는 ‘마루치 아라치’였습니다. 노래에는 거친 파도를 헤치고 힘차게 꿈을 찾아 나가는 어린 이재명의 꿈이 담겨있었습니다. 열일곱살 이재명은 “어렵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고 일기에 적어뒀습니다. 대장동에 걸린 정치적 책임과 결과적 책임을 극복하고 당장 당내 경선 불복문제부터 어떻게 풀어나갈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