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달 말 예정된 총선을 의식해 문 대통령과의 통화를 뒷전으로 미뤘다는 현지 언론의 분석이 나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12일 일본 외무성과 총리실(관저)이 애초부터 기시다 신임 총리가 조기 통화할 국가 그룹에 한국을 포함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인식을 했다고 보도했다. 작년 9월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취임 9일째 문 대통령과 첫 통화를 했다. 취임 9일째인 기시다 총리는 이날 문 대통령과의 통화가 없으면 스가 전 총리보다 첫 통화 시점이 늦어지게 된다. 일본 측은 이날 이후로 통화하는 일정을 놓고 한국 측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시다 총리가 첫 통화 그룹에서 한국을 뺀 것은 오는 31일 예정된 중의원 선거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집권 자민당의 지지 기반인 보수층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중국이나 한국에 저자세를 보이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이를 의식한 행보로 분석했다.
기시다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 내 파벌인 고치카이(일명 기시다파)는 전통적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해왔다. 실제로 중국과의 1972년 국교 정상화는 당시의 다나카 가쿠에이(1918∼1993) 총리와 고치카이를 이끌었던 오히라 마사요시(1910∼1980) 외무상이 실현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12월 타결된 한일 간 위안부 합의도 일본 측에선 당시 외무상인 기시다 총리가 협상을 주도했다.
닛케이는 문 대통령과의 통화 순서를 늦춤으로써 한국과의 외교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잠재우려는 것으로 분석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4일 취임한 뒤 1차로 모두 5개국 정상과 취임 인사를 나눴다. 상대국과 조율을 거쳐 성사된 1차 통화 대상은 일본이 동맹국으로 부르는 미국, 준동맹국으로 칭하는 호주 등 일본이 참여하는 중국 견제 외교 동맹체인 '쿼드' 멤버 국가 정상들이다.
취임 이튿날인 5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에 이어 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8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 및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통화했다. 통화 시간은 바이든 대통령과 모리슨 총리가 각각 20분으로 가장 짧았고, 시 주석이 30분으로 가장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