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제2 '오징어 게임' 꿈꾸는 스타트업

◆박호현 성장기업부




“시가총액이 500조 원에 달하는 엔비디아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인력과 자본을 가졌지만 그래도 많이 따라왔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만난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는 한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 기술이 과거보다 많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퓨리오사AI의 경우 AI 반도체 성능 평가 대회 MLPerf에서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경쟁 제품(T4) 성능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 받았다. 물론 T4나 신제품인 A100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기술력이 과거보다 상당히 진전된 것은 사실이다. 엔비디아 등 대형 기업의 제품과 비교당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MLPerf에 결과를 제출하지 못한 글로벌 반도체 스타트업도 많다. 성능 결과를 공개적으로 밝힌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자신감이다.


바나듐 이온 배터리가 들어가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스타트업 ‘스탠다드에너지’도 상당한 기술력을 인정 받고 있다. 스탠다드에너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연구진이 주축이 된 배터리 기업이다. 바나듐은 리튬이온 배터리와 달리 발화 위험이 매우 낮고 대용량으로 구현이 가능한 기술로 최근 개발됐다.


이들 기업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제조 기반 스타트업이다. 이들이 개발한 기술은 세계 시장에서도 조금씩 주목 받고 있지만 국내 자본시장에서 투자 받기가 꽤 어렵다. 거래액이나 이용자 수가 늘어나면 기업 가치가 1년 만에 수천억 원이 뛰는 e커머스나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과 다르다. 벤처캐피털(VC)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명 창업자가 재창업을 하거나 최근에는 메타버스 같은 주요 테마만 붙어도 수백억 원이 쉽게 오간다”며 “반면 반도체나 배터리 같은 제조 기반 스타트업은 투자 심사가 매우 까다로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혁신적인 반도체나 배터리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끝없는 자본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퓨리오사AI와 스탠다드에너지 등 국내 기술 스타트업이 점차 성과를 내는 것은 앞으로 기술 스타트업 투자 유치에 있어 청신호다. 대규모 고용과 재투자도 기대된다. 김부기 스탠다드에너지 대표는 “회사는 배터리 기반 제조업이기 때문에 향후 고용과 투자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세계적 수준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국내 AI 반도체·배터리 업체가 제2의 ‘오징어 게임’ 신화를 써나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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