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추억의 게임 디아블로2의 리마스터 버전, 디아블로2 레저렉션을 구매해 즐겨봤다. 원작의 단순하고도 중독적인 게임성을 깔끔한 그래픽으로 현대화하는 데는 성공했다. 블리자드의 직전 리마스터작인 워크래프트3처럼 번역·버그 문제가 두드러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을 연상케 하는 서버 상태와 블리자드 코리아의 ‘답 없는’ 고객응대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 30~40대 게이머에게 블리자드의 추억은 절대적이다. PC방과 e스포츠 문화를 정착시킨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에 이어 2000년대 초반을 휩쓴 디아블로2,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역사를 새로 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를 접해보지 않은 한국 게이머는 극히 드물다.
최근 블리자드는 과거 전성기 지식재산권(IP) 리마스터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아저씨’ ‘아줌마’ 게이머들은 청소년기를 함께한 옛 게임들이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는 것 만으로도 환호하고 있다. 이번에 리마스터 된 디아블로2는 지난 2000년 출시한 게임이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RPG의 성장에 액션을 더해, 액션RPG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디아블로2는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디아블로2 게임성의 핵심은 자르고 베는 ‘핵앤슬래쉬’적인 시원함과, 매번 다른 지도에서 다른 능력치를 지닌 적을 상대로 다양한 성능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로그라이크’적 면모다. 디아블로2는 몰려드는 적을 복잡한 조작 없이 각종 기술로 시원시원하게 정리하는 액션성이 매력이다. 리마스터 버전도 이 액션성을 잘 살렸다. 최대 800x600에 불과하던 해상도는 4K까지 지원되고, 20년 전 2D 그래픽도 깨끗한 고화질 3D로 재탄생했다. 아이템을 넣을 인벤토리를 늘리는 등 소소한 편의성 개선도 호평이다. 원작은 2021년에도 통할만한 명작이었다. 정신없이 적을 처치하고 아이템을 수집하다보면 어느덧 하루가 훌쩍 지나있다.
문제는 운영이다. 디아블로2 레저렉션은 최근 며칠간 서버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전설이 된 ‘배틀넷’을 처음 도입해 멀티플레이를 대중화한 게임이 디아블로다. 그만큼 멀티플레이는 디아블로2의 ‘필수요소’다.
디아블로2 레저렉션은 지난 9일부터는 4일 연속 서버 문제를 겪고 있다. 서버가 닫힐 때마다 ‘빽섭(서버 기록이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도 반복된다. 디아블로2는 캐릭터 성장과 아이템 획득이 핵심 콘텐츠다. 귀한 아이템을 얻었는데 갑작스럽게 서버가 닫히고, 획득한 아이템이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아이템 획득이 무작위로 결정되는 만큼 같은 노력을 다시 해도 잃어버린 아이템을 획득한다는 보장이 없다. 운영 차질에 게임 핵심 콘텐츠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태로는 한 번 죽으면 캐릭터가 사라지는 ‘하드코어’, 기간별로 순위를 겨루는 ‘래더’ 등 상위 콘텐츠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실제 서버 문제가 계속된 최근 며칠간 캐릭터를 잃어버린 게임 스트리머들이 속출하고 있다. 운영 차질이 계속되자 게임을 그만두거나 환불에 나서는 게이머도 속출 중이다. ‘블리자드의 만행을 고발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1만2,000여 명이 서명했다.
블리자드 코리아의 대응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 블리자드 코리아는 매일 같이 반복되는 운영 차질에도 별다른 공지조차 띄우지 않고 있다. 본사 영문 홈페이지에 관련 공지가 이어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평범한 이용자들은 게임 실행기의 “서버 문제를 해결 중”이라는 한 줄 외에는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단순 리마스터 치고는 비싼 가격인 4만8,000원을 지불한 이용자들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채 방치되고 있다. 블리자드 공식 포럼에는 원색적인 욕설들이 이어진다. ‘불완전판매’라는 지적도 나온다.
원작 디아블로2도 초기 극심한 서버 문제를 겪었었다. 그러나 20년 간 기술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었을리가 없다. 훌륭한 완성도로 빚어진 디아블로2 레저렉션이 이를 증명한다. 기술은 발전하고 게이머도 성장하는데, 블리자드의 운영은 갈수록 퇴화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