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 광산 팔고 해외투자 접고…이대론 '자원 식민지 국가' 될판

■불붙는 新자원전쟁
<상> 거꾸로 가는 해외자원개발
광산 미래가치 고려않고 잇단 매각
광해광업공단은 아예 직접투자 폐지
내년엔 산유국 지위마저 상실 가능성
원재료값 급등 속 기업들만 속앓이
"정부 주도 협력체계 구축 서둘러야"

한국 최초의 가스전인 ‘동해 가스전’의 모습. 내년 이곳의 천연가스 생산이 끝나면 한국은 산유국 지위를 잃게 된다. /사진 제공=한국석유공사


울산 앞바다에서 남동쪽으로 58㎞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상 광구 ‘동해 가스전’. 지난 2004년 7월 이곳에서 최초의 국내산 천연가스가 생산되면서 한국은 세계 95번째로 산유국의 꿈을 실현했다. 하지만 산유국의 지위를 누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이면 가스전의 수명이 다하기 때문이다. 인근 울릉 분지에서 대륙붕 탐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성공을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산유국 지위를 잃게 되면 앞으로 해외 자원 개발에서 입찰이나 참여가 제한되는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가 해외 자원 개발에 뒷짐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해 가스전의 불길마저 사그라질 경우 대한민국 자원 개발은 본격적인 암흑기로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적폐’ 꼬리표 붙은 해외 자원 개발



과거 이명박(MB) 정부가 공들였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MB 정부의 자원 외교가 부실로 드러나면서 해외 자원 개발 사업도 ‘적폐’로 낙인찍힌 탓이다. 물론 MB 정부가 임기 내 단기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를 자본 잠식에 빠뜨리는 등 대규모 손실을 자초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해외 자원 개발 사업 자체를 부정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해외 자원 개발에 손을 놓은 사이 배터리·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사용되는 원자재 가격은 치솟았고 해외 수입에만 의존한 원자재는 물류대란과 겹치며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적폐’ 딱지는 공기업의 해외 자원 개발을 얼어붙게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석유공사·가스공사·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자원 관련 공기업의 지난해 해외 자원 개발 사업 투자액은 7억 1,300만 달러로 집계됐다. 9년 전인 2011년(70억 3,100만 달러)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수치다. 민간 기업의 자원 개발 사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도입된 성공불융자 예산도 마찬가지다. 투자 위험성이 높은 자원 개발 사업의 특성을 고려해 만들어진 성공불융자는 돈을 빌려준 뒤 사업이 실패할 경우 일정 부분 상환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2010년 3,000억 원이 넘던 성공불융자는 현재 10% 수준인 300억 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이마저도 사업비 지원과 감면 한도가 대폭 축소됐고 심사 기준도 까다로워지면서 기업들은 신청조차 하지 않는다. MB 정부 당시 성공불융자를 받아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나섰던 국내의 한 기업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특혜 시비에 휘말려 감사원의 표적 감사를 받기도 했다.


신규 투자 지원은 줄어든 대신 해외 자산 매각은 오히려 속도를 내고 있다. 광물자원공사는 2016년 페루 마르코나 구리 광산을 시작으로 2018년 호주 물라벤 유연탄 광산, 2019년 미국 로즈몬트 구리 광산에 이어 올해 칠레 산토도밍고 구리 광산과 캐나다 구리 탐사 기업 캡스톤 지분을 모두 팔아치웠다. 또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코발트 광산, 멕시코 볼레오와 파나마 코브레파나마 구리 광산, 호주 와이옹 유연탄 광산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세에 발맞춰 우리가 보유한 해외 광산의 미래 자산가치도 함께 상승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성급한 매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제적인 해외투자를 위한 손발도 묶이고 있다. 광물자원공사와 광해관리공단을 통합해 지난달 출범한 광해광업공단은 해외 자원 개발 직접투자 기능을 아예 폐지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공기업이 자원 개발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난 10년간 그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해외 자원 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자원 빈국’인 우리는 10년 뒤 ‘자원 식민지 국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광물자원공사가 매각을 추진 중인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의 광석 처리 시설. /사진 제공=광물자원공사

치솟는 원자재 가격에 공급 충격 현실화



정부가 자원 개발에 손을 놓으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들에 돌아가고 있다. 특히 최근 전기차 배터리 등 4차 산업의 핵심 소재가 되는 주요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제조 업체들로서는 공급난 공포까지 가중되는 상황이다. 국내의 한 전기차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는 대부분 장기 계약을 통해 공급하는데 1년 새 코발트에 니켈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원가 부담이 커져 영업이익 악화가 불가피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니켈·구리·리튬 등 산업적 중요도가 높은 15개 광물의 가격을 지수화한 ‘광물종합지수’는 13일 3,015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3,000포인트를 넘어섰다. 지난해 10월(1,535)과 비교하면 1년 새 2배가량 뛰어오른 수치다.


이 같은 원자재 가격 급등에 국내 제조 업체들은 해외 광산 업체에 지분 투자하거나 옵션 계약을 맺는 등 ‘각자도생’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자원 업계 관계자는 “이제 기업들도 더 이상 정부에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각자도생하는 분위기”라며 “과거만 해도 공기업들이 해외 자원 개발의 판을 먼저 깔고 민간 기업의 참여를 유도해왔다면 지금은 공기업들이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자원 확보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원자재의 안정적 수급이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국내 제조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자원 개발을 민간에만 맡길 경우 중국처럼 정부가 중심이 돼 움직이는 국가에 비해 성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 주도의 협력 체계 구축과 시너지 창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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