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충격이 발생하면 높은 수준의 가계부채가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이우헌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
국내 대표 경제학자들이 현재 가계부채가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충격을 받았을 때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아 경고했다. 금융위기 때의 집값 폭락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아울러 가계부채 문제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금융 당국이 강력한 대출 규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경제학자들은 집값 때문에 가계부채가 늘었다며 부동산 시장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학회는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8일까지 경제토론 패널 소속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가계부채와 관련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28명 전원이 현재 가계부채 규모가 높은 수준이라고 답변했다. 특히 응답자 43%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답변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가계부채 규모가 높다고 답변한 경제학자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자체도 높은 수준이지만 그보다 더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며 우려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득 대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국제결제은행(BIS) 17개국 중 다섯 번째로 높다”며 “문제는 증가 속도인데 코로나19 직전인 지난 2019년 말 대비 증가 폭은 전체에서 두 번째로 높다”고 지적했다. 이우헌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매우 부정적인 충격이 발생하면 가계부채가 금융위기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계부채가 높은 원인으로는 89%가 ‘주택담보대출 등 주거 서비스 자금 수요’를 꼽았다. 사실상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집값 상승이 가계부채 급증이라는 위험 요인을 키웠다는 평가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주담대 증가가 가장 큰 요인이고, 임대차 3법 이후 전세금 대출도 늘었다”며 “주택 장만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체념을 겪은 젊은 세대가 증권 투자 등 비생산적이고 투기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 대출이 계속 늘고 있다”고 꼬집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주거 비용 증가가 원인인데 이는 지난 몇 년간 주택 시장에서의 정부의 공급 정책 실패가 근본적 이유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안정적인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중요한 요인에 대한 질문에는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고 답변한 비율이 61%에 달했다. ‘금리 정책과 유동성 관리’가 18%,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11% 등으로 뒤를 이었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해서 집 사는 광풍이 불어서 기존 가계부채 중 가장 덩치가 큰 주택 관련 대출이 늘었다”며 부동산 시장 안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허 교수도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 공급 정책을 실시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규제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며 “부동산 공급 정책에 실패한 정부가 대출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부채 문제를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