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종류의 정신 질환으로 군사훈련을 거부한 사람에 대해서 소집에 불응했다는 이유만으로 병역법 조항을 내세워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척추질환 4급의 병역 판정을 받은 A씨는 2017년 3월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시작했다. 몇 주 뒤 A씨는 복무 중 허리를 다쳐 공무상 질병 승인을 받았다. 그는 같은 해 6월 군사교육을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으나 통증과 스트레스 등에 시달렸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신건강 문제로 훈련을 더 받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일주일 만에 퇴소했다.
A씨의 정신건강은 퇴소 후 대학병원 등을 돌며 치료를 받는 동안 오히려 악화했다. 강박장애와 적응장애, 공황장애 발작을 동반한 불안장애, 충동조절장애, 우울증 등 추가 병명 등을 진단 받으며 치료용 약물을 과다복용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몇 차례 응급실로 실려가기도 했다.
A씨가 정신질환을 앓는 중에도 병무청의 군사교육 소집통지서는 계속 왔다. A씨는 진단서와 의사 소견 등을 첨부해 두 차례 훈련을 연기했다. 현행 사회복무요원 소집업무 규정에 따르면 더 이상 훈련 연기신청이 불가능했다. 담당 공무원은 A씨에게 대신 병역처분변경 신청이 가능하다는 안내를 했다.
A씨는 사회복무요원의 경우 군사교육 등 의무이행 연기횟수를 2회로 제한하고 있는 사회복무요원 소집업무 규정이 병역법 시행령 등 상위법령에 근거가 없는 규정이라고 주장하며, 더 이상 연기를 허용하지 않는게 잘못이라고 병역처분변경신청을 따로 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2019년 5월 병무청으로부터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 당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의 선고를 유예하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병역법은 사회복무요원이 질병 등 본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정당한 사유 없이 소집에 응하지 않으면 처벌한다고 규정하는데, A씨는 병역처분 변경신청 절차로 불이익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받고도 자의로 소집에 응하지 않았다 취지에서다.
1심 재판부는 “'관련 규정에 따른 추가적인 소집연기가 불가능하고,다만 병역처분변경을 신청하여 불이익을 면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 없이 소집에 응하지 않았다”며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2심 판단도 같았다. 2심은 “연기횟수를 2회로 제한한 사회복무요원 소집업무 규정이 평등원칙이나 기본권 최소침해원칙을 위반한 위헌적 규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판단은 뒤집혔다. 대법원은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의 영향으로 군사교육 소집통지를 받은 당시 병역처분변경 신청을 거부하고 소집에 응하지 못한 것은 피고인의 책임으로 볼 수 없다”며 “이는 병역법 제88조에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