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 안보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공급망 차질과 인플레이션 등이 겹치며 복합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18일 퍼펙트 스톰을 넘기 위해 신설된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열고 미국 정부의 반도체 관련 정보 제공 요구에 대한 대응 방향을 첫 의제로 올렸다. 정부가 발표한 정책 방향은 기업의 자율성, 정부의 지원, 한미 간 협력 등 세 가지였다. 미국이 힘의 논리로 전략산업의 패권을 쥐려 하는 상황에서 과도한 대응은 통상 마찰을 불러올 수 있어 최대한 추상적 어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해할 만도 하지만 제대로 된 실행이 없다면 수사(修辭)로 가득한 보여주기에 그칠 것이다.
주요국들은 선제적으로 산업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정부 차원의 공세적 전략을 펼치고 있다. 총성 없는 전쟁에서 기업만의 힘으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업들은 다음 달 8일까지 미국의 공급망 설문에 응할지 입장을 정해야 하는데 실상 자국 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요구를 거절하면 미국 공공 조달 시장 참여가 힘들 수 있고 무턱대고 응하면 핵심 기술 노출로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복잡한 퍼즐을 풀려면 청와대와 범정부 부처, 정치권이 총력을 다해 밀도 있는 해법을 찾고 미국과 조율에 나서야 한다. 반도체 가격 협상, 신규 고객 확보, 공장 증설은 물론 초격차 기술 주도권 등이 모두 걸려 있는 다른 형태의 치킨 게임이다.
현재의 산업 전쟁은 거시 경제 위기와 맞물린 ‘다중 전쟁’이다. 복합 위기에 걸맞은 정밀하고 종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반(反)기업 정책을 버리고 정부와 여야가 초당파적으로 전략산업 전반의 기술 초격차 확보를 위한 지원책을 찾아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가치 동맹 강화도 필요하다. 각국이 ‘자국 이익 우선’에 올인하면서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지금은 소나무 한 그루가 아닌 숲 전체를 바라보는 혜안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