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부 장관, 경제학자들이 모여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미국 와이오밍주의 잭슨홀 미팅이 2005년 8월에 열렸다. 모임에서는 장기 호황을 이끌어온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한 젊은 학자가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했다. “미국 경제는 거품 상태이고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로런스 서머스 미 재무부 차관조차 젊은 학자를 겨냥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3년 뒤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제 터졌다. 위기를 정확히 경고한 사람은 라구람 라잔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였다.
라잔은 잭슨홀 연설 당시 이미 촉망받는 경제학자였다. 2003년 미국금융협회가 40세 이하의 금융경제학자 중 최고 석학에게 주기 위해 제정한 ‘피셔 블랙상’을 처음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또 같은 해 최연소이자 동양인 최초의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지명됐다. 라잔은 1963년 인도에서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주로 해외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견문을 넓혔다. 델리 인도공과대(IIT Delhi)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한 뒤 인도경영대학원(IIM) 아흐메다바드 MBA를 거쳐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 회계감사원 원장, 인도 중앙은행 총재 등을 거쳐 지금은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라잔 교수가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내세우며 전방위로 기업들을 압박하는 중국 당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그는 17일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이 기술 업계부터 사교육·부동산까지 경제의 광범위한 부문을 규제하려다가 큰 실수를 저지를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아야 하지만 많은 것을 동시에 다루면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의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이 4.9%로 곤두박질쳤다. 코로나19가 휩쓴 지난해 3분기를 제외하면 1992년 이후 가장 낮다. 차제에 우리도 ‘차이나 리스크’ 확산에 대비해야 한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등 정교하게 방파제를 쌓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