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빅블러 시대, 부처 칸막이 없애야 공정금융도 가능"

[서경 금융전략포럼]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주제강연
빅테크, 막대한 이용자 기반으로
지배력 남용·데이터 독점 등 폐해
부처간 협업 통해 산업변화 대응
시장참여자 규제차익 최소화해야

20일 열린 ‘제21회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주제 강연자로 참석한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이 ‘디지털 혁명과 금융의 미래’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이호재 기자


금융이 정보기술(IT), 빅데이터 등과 융합하는 현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소관 정부 부처들도 변화하는 산업 흐름에 맞춰 칸막이를 없애고 협업 체계를 구축해야 산업이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네이버·카카오 등 빅테크의 금융 공습이 △시장 지배력 남용 △전통 금융사와의 기울어진 운동장 △데이터 독점 등 우리 경제에 3대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동일 기능, 동일 규제 원칙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소장은 20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21회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디지털 혁명과 금융의 미래’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금융과 정보통신, 개인 정보 보호, 공정 경쟁 이슈 등이 융복합되며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빅블러(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며 기존에 존재하는 것들의 경계가 뒤섞이는 현상), 경계의 종말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산업이 변화하는 것에 맞게 규제도 보조를 맞춰야 시장 참여자들의 규제 차익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잘못된 신호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로 독과점 및 불공정 경쟁, 개인 정보 침해 등 경계를 넘나드는 문제가 불거지고 있으므로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주무 부처가 협업을 해 산업 변화의 흐름을 쫓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이날 정 소장은 빅테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정 소장은 “빅테크가 막대한 이용자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초기에는 적자를 감수하며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독과점 지위를 확보한 후 점차 유료화하는 ‘약탈적 가격 책정’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아마존은 연간 20억 달러의 손실을 봤음에도 연 79달러의 구독 프로그램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를 시작한 후 고객 저변이 넓어지자 요금을 99달러로 인상했지만 여전히 고객 충성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통 금융사와 빅테크 간의 불공정 규제,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서도 정 소장은 “우리나라는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가 명확해 금융사의 비금융업 진출을 엄격히 제한하지만 빅테크는 기본적으로 금융사가 아닌 것으로 법적으로 해석돼 금융 분야에 쉽게 진입한다”고 지적했다. 빅테크는 이를 토대로 비금융 스타트업에 투자를 해 사업 범위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지만 기존 금융사는 손발이 묶여 있다는 이야기다.


데이터 활용에 있어서도 빅테크는 금융사로부터 개인의 대출금·예금·증권 등의 금융 정보를 받아보지만 금융사는 반대로 빅테크가 가진 정보를 받는 데 한계가 있다고 정 소장은 꼬집었다. 그는 “빅테크는 신용정보법에 따라 금융사가 갖고 있는 다양한 개인 금융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지만 비금융 정보인 위치, 검색 정보 등은 위치정보법·개인정보법에 의해 정보 제공 대상이 아니다”라며 “결과적으로 전통 금융사는 본인들의 핵심적인 정보는 빅테크와 공유하는 반면 빅테크로부터는 한정적인 정보만 받아 불균형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소장은 이런 빅테크의 폐해를 막으면서도 금융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동일 행위에 대해 동일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소비자에게 동일한 기능을 제공하는 회사라면 같은 규제를 적용해 불공정 경쟁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정 소장은 “핀테크에도 동일한 기능을 제공한다며 빅테크 수준의 규제를 적용하면 제대로 성장할 수 없으므로 빅테크와 핀테크 간에는 이원화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해외는 무수히 많은 핀테크 업체가 빅테크와 버금가는 수익을 내며 혁신을 추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핀테크 업체 수는 해외와 비슷하더라도 수익 규모는 해외의 100분의 1도 안 될 것”이라며 “빅테크보다 완화된 규제를 통해 혁신을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금융사와 비금융사에 대한 업무 범위를 보다 명확하게 규정해 전통 금융사가 핀테크에 활발히 투자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통해 기존 금융사와 핀테크의 협업으로 혁신 금융 서비스가 탄생하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전통 금융사와 빅테크 간 불공정한 정보 공유 행태에 대해서는 “플랫폼에 대한 정보 독점 우려가 있으니 관련된 기준과 제도를 더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궁극적으로는 금융사와 빅테크·핀테크가 상생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지금까지처럼 빅테크와 기존 금융사가 각자의 분야를 침범하지 않고 독립적 영업을 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전통 금융사가 빅테크에 종속되는 그림보다는 각자가 경쟁과 협업을 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최대의 효용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금융사와 핀테크·빅테크 모두 금융 상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기능을 가짐으로써 경쟁과 협업을 통해 소비자 효용을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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