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1월 “한국 재벌가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나라를 세계 최대 강국으로 성장시키며 부와 권력을 구축했으나 현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로 위기를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막대한 상속세를 부담하게 될 한국 재벌 승계자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실제 삼성 일가가 납부할 세액은 약 12조 원에 달해 역사상 세계 최대 상속세액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정부가 지난해에 징수한 총상속세의 세 배 이상에 해당하는 규모다. 5년 분할 납부 1년차인 올해 10월 12일 삼성 계열사 주식 2조 원 정도가 시중에 풀린다는 소식에 삼성그룹주 19조 원이 증발했다. 이런 상황은 향후 5년간 되풀이될 것으로 전망된다.
①유례없는 상속세 폭탄
총 조세수입 대비 상속·증여세 비중
韓 2.2%로 OECD 1위…美는 0.5%
②70% 부과 스웨덴의 흑역사
아스트라 파산하며 英 제네카에 합병
이케아·H&M 등 창업주는 해외 이주
③가업승계 돕는 선진국
美, 비영리 재단 활용 경영권 방어 가능
佛·벨기에도 일정기간 고용 유지땐 면제
④과세 패러다임 전환 시급
차등의결권 허용하고 유산취득세 전환
최소한 직계비속 상속세라도 폐지해야
국민소득 2.7배 늘었는데…과세표준 20년째 그대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 문제에서 비롯된 상속세 완화에 대한 논쟁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외면됐던 이슈였다. 상속세 문제는 중소기업을 포함해 국내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인의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한국은 최고 60%의 상속세를 고스란히 납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업상속공제제도는 지나치게 엄격해 그다지 쓸모없고 자산 총액 5,000억 원 이상, 매출 3,000억 원 이상인 기업은 공제제도 자체가 아예 없는 상황이다. 막대한 상속세 부담에 따른 역효과도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는 100년 기업이 존재할 수 없는 구조다. 삼성그룹의 경우처럼 과도한 상속세는 그룹 지배구조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 역시 상속세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반 국민의 재산 대부분은 부동산(비중 약 65%)인데,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과 실물 자산의 가격이 무섭게 올라 상속세의 적용을 받는 인구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사회 전반적으로 과도한 상속세에 대한 문제 인식과 함께 이를 완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과도한 상속세 문제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를 흔들 정도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 만큼 국가적인 차원에서 반드시 개선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실제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중 상속 관련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는 미국과 영국·프랑스·독일·일본·한국 등 24개국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속세는 OECD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가 상속세 최고세율을 50%로 높이고 그 대상도 과세표준 ‘50억 원 초과’에서 ‘30억 원 초과’로 강화했다. 국민소득은 그간 2.7배 올랐는데 이 기준은 20년째 변경이 없다.
獨 가업상속 활용 연간 1만7,000여건
어느 국가나 상속·증여세가 전체 세수에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총 조세 수입 대비 상속·증여세 수입 비중은 2019년 기준 일본 1.3%, 미국 0.5%, 독일 0.5%인데 한국은 2.2%로 OECD 37개국 중 1위다. OECD 평균은 0.4%다.
그렇다면 상속세가 55%인 일본, 40%인 미국·영국 등은 어떻게 견디는가. 미국은 비영리 재단에 기부할 경우 상속세가 없어 재단을 통해 기업의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 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조지 소로스 등은 모두 자선 재단을 소유하고 있다. 록펠러 재단과 카네기 재단도 같다. 공익재단에 기부도 어렵고 기부하면 의결권이 제한돼 공익재단을 활용한 상속세 회피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다른 방법은 차등의결권 주식 활용이다. 포드 가문은 1주당 16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클래스 B 주식 대부분을 직접 소유하고 있다. 이를 매각할 경우 최우선적으로 포드 가문의 일원에게 매각해야 한다는 협약을 이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매물로 나온 주식을 매입해 보유할 수 있는 신탁 펀드도 운영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차등의결권제도 자체가 없다.
일본은 공익법인이 상속 또는 유증에 의해 취득한 재산으로 해당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 제공하는 것이 확실한 경우 그 재산의 가액은 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되지 않는다. 예컨대 게임으로 유명한 고나미의 경우 창업 가문인 고즈키 가문이 고즈키홀딩스와 고즈키 재단(上月財?)을 통해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상장회사 주주 중 주식을 1조 원 이상 보유한 공익법인 수는 한국은 2개사 뿐인데 일본은 95개사에 달할 정도다. 여기에 일본은 비상장 중소기업 기업 승계 지원 제도인 ‘경영승계원활화법’을 통해 친족 이외의 후계자도 회사 주식을 시가보다 싸게 인수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상속세 공제를 받기 위해 상속·증여 후 5년간 고용을 ‘매년 80% 이상’ 유지하도록 완화했다.
독일은 가업상속제도 활용이 활발하다. 연평균 1만 7,000여 건, 액수로도 연간 55조 원에 달한다. 본래 독일의 상속세는 30%이지만 상속 재산이 기업일 경우 가업 승계 후 7년간 자산을 유지하고 급여 총액의 평균이 승계 당시 급여 총액보다 감소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요건을 지키면 상속 재산의 100%가 공제된다. 기업을 죽이는 것보다 상속받은 기업을 계속 운영해 고용을 유지하도록 해 법인은 법인세, 근로자는 근로소득세를 납부할 경우 이 방법이 국가 세수 증대에 효과적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프랑스와 벨기에·일본 등의 국가들도 가업 상속 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세금을 면제해 주거나 큰 폭의 세금 공제 혜택을 부여한다.
막대한 상속세에 해외로 탈출하는 창업주
스웨덴 굴지의 제약회사 아스트라는 오너 사망 후 70%에 이르는 과도한 상속세로 파산, 영국의 제네카와 합병해 현재의 아스트라제네카가 됐다. 본사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소재한다. 세계적인 가구 회사 이케아는 본사를 네덜란드 델프트로 옮겼고 창업주는 스위스로 이주했다. 본사를 옮기는 대신 창업자가 해외로 탈출한 사례로 세계적인 의류 회사인 H&M, 부동산 개발·투자 회사 룬드베리는 본사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창업자는 각각 1982년, 1985년 상속세 문제로 이민을 갔다. 우유 팩을 발명한 테트라팩은 1981년 상속세 문제로 본사를 스웨덴에서 스위스로 이전하고 창업자는 미국으로 이민 갔다. 2005년 보수 정권이 아닌 진보 좌파 성향의 사민당 정권이 상속세를 폐지했지만 떠난 기업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다만 1856년 설립, 스웨덴 국민총생산의 3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그룹은 공익재단을 설립해 상속세를 해결하고 있다.
美 상속·증여세 공제금액 두배로 확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시 상속세(Estate Tax)와 증여세(Gift Tax)의 공제 금액을 두 배로 확대했다. 배우자는 한도 없이 면세되며 통합 세액공제는 1인당 1,170만 달러(133억 원)까지다. 부부 각자로 보면 2,340만 달러(약 266억 원)까지 면세다. 부부 각자가 가족에게도 매년 1인당 1만 5,000달러씩 면세 증여할 수도 있다. 미국 외에 배우자 공제 한도가 없는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일본(법정 상속분 내) 등이다. 한국은 10년간 5,000만 원까지만 면세 증여가 가능하고 배우자 공제 한도는 30억 원이다. 부친이 사망하면 살던 집을 팔아 막대한 상속세를 국가에 바치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면서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겠는가. 과도한 상속세는 기업을 붕괴시키고 결국은 한국을 붕괴시켜 기업의 미래와 후손의 일자리를 파괴한다. 이에 따라 차기 정부는 먼저 차등의결권제도를 허용해야 한다.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하는 경우 상속증여세를 면제해줘야 하며, 공익법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 최대 5년의 연부연납 기간은 적어도 10년 이상으로 인정하면서 낮은 지연 이자율을 적용해 경영권 승계를 지원해야 한다. 상장 주식으로 물납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예술품에 대한 물납도 허용돼야 한다. 상속세를 개편해 유산취득세 또는 자본이득세로 전환해야 한다. 적어도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는 폐지돼야 하며 배우자에 대해서는 한도 없이 공제해줘야 한다.
☞최준선 교수는 국내 최고의 법학 전문가다. 그는 성균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독일 마르부르크대에서 법학 박사를 취득, 성균관대에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활동했다. 현재는 명예교수로 지내고 있다. 30년 넘게 강단에서 법을 가르친 경험과 지식, 학자로서의 신념을 갖고 국내 상법과 과도한 상속세 문제를 지목하며 이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과거 한국기업법학회 회장과 한국상사법학회 회장, 법무부 상사법개정 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