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K드라마...세계가 韓며들었다

[질주 요인은 뭘까]
OTT의 확장성, 서비스되는 모든 국가에 방영 가능...제작비 등 회수도 상대적으로 용이
장르의 복합성, 아이디어·스토리라인 등 독특...노출 없이도 모든 문화권에서 인기
주제의 보편성, 비싼 집값·양극화·일자리 부족 등 세계적으로 공감 가능한 이슈 담아
높은 가성비, 제작비 251억 들인 '오징어 게임' 경제적 가치는 41.7배인 104조

오징어게임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K-드라마가 세계 콘텐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 세계에서 한국 드라마 인기가 거세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순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간) 기준 넷플릭스 글로벌 인기순위에서 한국 작품 3개가 10위 권에 자리했다. 한달 째 1위를 고수하는 ‘오징어 게임’ 외에 ‘마이 네임’이 4위, ‘갯마을 차차차’가 8위에 각각 올라 있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 극중 등장인물들이 입은 트레이닝복과 분홍색 점프수트가 해외에서 할로윈 의상으로 각광을 받을 정도로 열풍이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처럼 K-드라마가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다양한 잠재 요인들이 OTT 보급과 맞물려 한 번에 터진 결과로 풀이된다. 국내 시청자들의 복잡다단한 입맛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한 작품에 균형 있게 집어넣고,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를 짚어낸 주제 의식이 해외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퀄리티 높은 작품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만들어내는 한국 제작사들의 ‘가성비’ 역시 K-드라마의 독보적인 강점으로 꼽힌다.




‘마이 네임’ 포스터 /사진 제공=넷플릭스

◇OTT의 확장성, K드라마 확산에 날개=OTT는 한국 드라마가 쌓아 왔던 잠재적 능력이 전 세계에서 꽃 피우는 최적의 무대가 됐다. OTT에 방영권이 판매되면 서비스되는 모든 국가에서 방영이 가능하기에 언어 장벽을 뛰어넘어 손쉽게 해외 진출의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의 배우 이정재는 “넷플릭스가 안 들어가는 국가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고, 공개 후 전 세계적 반응을 하나로 모아서 홍보하는 것도 스케일이 다르다 생각했다”며 OTT의 파급력에 감탄한 바 있다. OTT의 알고리즘이 시청자 층을 넓혀 주는 면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징어 게임'을 본 해외 시청자들에게 한국 드라마가 추천되면서 현재 방영되고 있거나 새로 등장한 국내 콘텐츠가 주목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를 시장으로 둔 글로벌 OTT의 경우 수익을 통한 비용 회수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이점 때문에 제작 환경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넷플릭스와 작업하며 예술적 부분을 간섭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한다”고 짚었다.


◇미스테리? 휴먼? 로맨스?…장르의 복합성=해외에서 한국 드라마의 대표적 장점을 꼽는 요소 중 하나는 다양한 스토리 라인이다. K-드라마 팬이라는 작가 테일러디올 럼블은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한국 드라마는 극단적으로 양식화돼 있고, 화려하며,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어 현실에서 빠져나오기 좋다”고 평가했다. 또 영미권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독특한 아이디어와 예측 불허의 스토리 라인이 있으며, 노출이나 섹스 장면이 없어 어느 문화권에서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홍석경 서울대 교수는 한 발표문에서 K-드라마를 본 프랑스 시청자들의 소감을 인용해 “프랑스의 서스펜스물에는 서스펜스만 있지만 한국 작품에는 다양한 장르의 요소가 균형 있게 들어가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갯마을 차차차’ 중 한 장면. /사진 제공=tvN

◇한국 현실에 담긴 보편적 주제 의식=‘킹덤’, ‘스위트홈’, ‘승리호’ 등 글로벌 성공작들은 좀비·크리처물·SF 등 해외 시청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르물에 정치와 욕망, 가족애라는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다. 특히 ‘오징어 게임’은 데스게임 장르에 부익부빈익빈, 가계부채 등의 문제를 버무려 드라마를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사회적 문제의 반영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이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동시에 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슈다. 뉴욕타임스(NYT)는 “‘오징어 게임’은 한국의 비싼 집값, 일자리 부족 등을 건드린다”며 “미국 등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걱정거리들”이라고 평했다. 어촌 마을의 이야기인 ‘갯마을 차차차’ 역시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바닷마을의 사람 냄새에 한국적인 소재이면서도 보편적인 정서를 건드린다.


◇높은 ‘가성비’에 제작 매력 커져=질 좋은 작품을 상대적으로 낮은 제작비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은 OTT가 한국 드라마를 눈여겨보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넷플릭스 내부 문서를 인용해 ‘오징어 게임’ 제작비가 2,140만 달러(약 251억 원)인 반면 작품이 창출한 경제적 가치는 그 41.7배인 8억9,110만 달러(약 104조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회당 제작비는 약 240만달러로 ‘더 크라운’(1,000만달러), ‘기묘한 이야기’(800만달러) 등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보다 훨씬 적다. 한국 드라마 기준으로만 본다면 이른바 ‘텐트폴’ 수준의 높은 제작비지만 세계 무대에서는 턱 없이 낮은 제작비로 엄청난 가치를 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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