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억에 팔린 이우환 '동풍' 두달새 매물로…폭죽 아닌 버블 신호탄?

[투자냐 투기냐 기로에 선 아트테크]
<상> 2007년과 2021년 호황기 평행이론
이대원-김창열 부고로 활황 시작
아트펀드-NFT 新투자기법 등장
신진작가 부상도 2007년과 판박이
호황 징후 속 '묻지마 투자' 양상
전문가들 "버블 재연되나" 우려

지난 8월 경매에서 31억원에 낙찰돼 국내 생존작가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이우환의 ‘동풍’이 지난 13일 열린 키아프서울에 다시 나왔고 첫날 즉시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례없는 거액의 ‘뭉칫돈’이 미술 시장을 향하고 있다. 유동성 증가로 투자처를 모색하는 시중 자금이 부동산과 주식에 이어 이제 ‘미술 투자’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아트테크’의 시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미술 시장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평균 0.1% 수준인 데 반해 한국은 여전히 0.02%로 ‘빈약’한 수준인 만큼 국내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큰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급속도로 팽창하는 미술 시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크다. 최근 미술 시장의 열기가 ‘버블 붕괴’로 씁쓸하게 끝난 지난 2007년 호황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서울경제는 유례없는 활황 속에서 ‘투자’와 ‘투기’의 기로에 놓인 미술 시장의 현황을 분석·연재한다.





2007년 이후 14년 만에 제대로 불이 붙은 올해 미술 시장의 호황은 여러모로 2007년과 ‘닮은 꼴’ 양상을 보인다. 2007년 호황 사이클은 이대원(1921~2005) 화백의 부고 소식으로 시작돼 박수근(1914~1965)의 ‘빨래터’가 45억 2,000만 원에 낙찰되며 정점을 찍었다. 3,000만 원대에 거래되던 이대원의 작품은 작고 이듬해인 2006년 2억 원을 넘겼고 2007년 5월 경매에서는 4억 1,000만 원에 거래됐다. 그해 93억 원어치나 거래된 그의 작품은 호황기가 끝나면서 이후 연간 거래액이 14억~27억 원으로 사그라들었다.


이번 호황기의 마중물은 ‘물방울의 화가’로 불린 김창열(1929~2021) 화백이 길어 올렸다. 지난 1월 작가 타계 이후 미술경매를 중심으로 김창열 그림값이 급등했다. 2월 서울옥션에서 1977년작 ‘물방울’이 10억4,000만 원에 팔리며 직전 최고가인 2020년 7월 케이옥션에서의 5억9,000만 원 기록을 단숨에 갈아 엎었다. “화가가 작고하면 그림값이 오른다”는 통념도 있지만 무엇보다 수요 심리를 공략한 기존 소장가들이 수작을 내놓거나 그림을 물려받은 자녀 세대의 취향 변화 등이 작동해 ‘공급자 주도’의 시장이 형성되기도 한다.


미술 시장은 전형적인 ‘낙수 효과’를 보여 최고가 경신과 화제성 전시, 작가에 대한 관심이 늘며 시장 심리 전반을 움직이게 한다. 14년 전 박수근이 맡았던 ‘주도주’ 역할은 지금 김환기에 이어 이우환과 ‘단색화’라 불리는 박서보·정상화 등으로 옮겨갔다. 2007년 데이미언 허스트와 제프 쿤스 등 서양 미술가와 경제성장을 뒷배로 둔 중국 현대미술의 급성장이 화제몰이를 했다면 올해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수집품 기증이 미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 불을 붙였다.


미술 투자와 관련한 금융 상품이나 새로운 투자 기법이 등장한 것도 10여 년 전과 판박이다. 2006년에는 굿모닝신한증권과 표화랑이 손잡고 75억원 규모의 ‘1호 아트펀드’를 출시해 2008년 기준으로 4개 운용사 5개 펀드에서 1,000억원대 ‘뭉칫돈’이 미술시장으로 유입됐다. 당시 아트펀드들은 연 10% 이상의 수익률을 목표로 평균 3년 간 운용됐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투자 기간이 너무 짧았던 것이 패착이었고 이후 닥친 금융위기가 결정타였다. 이번 호황기에는 2~3년 전부터 등장한 미술품 분할 판매 및 공동 구매와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가 미술투자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호황기 미술시장은 스타 작가를 낳는다. 2007년 당시 급부상한 40대 A 작가는 “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그림이 개인전에 나왔”을 정도였다. 2005년까지 200만 원대이던 그림값이 2007년 1억 2,000만 원의 최고가를 기록하고 그해 약 22억 원의 낙찰 총액을 기록했다. 비슷한 연배의 B 작가도 2000년 240만 원에 팔린 게 유일한 경매 기록이었으나 2007년에는 작품값이 5억 원에 최고치를 찍었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도 되풀이되는 양상이다. 2019년에 700만~800만 원대에 거래되던 40대 C 작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대중 매체에서의 인기가 작품값을 견인해 최근 경매에서 2억 원대를 훌쩍 넘겼다. 지난해 경매 기록이 0건인데 올해만 25억 원(28점)어치가 낙찰됐다. 경매에 나왔다 하면 20회 이상의 경합이 붙는데 주식시장이라면 ‘사이드카’가 발동될 정도의 과열 양상이다. 30대 D 작가도 비슷하다. 2019년 500만 원대에 팔린 동일 작품이 9월 경매에서는 1억 1,500만 원에 거래됐다. 2년 만에 약 20배 치솟은 셈이다. 최근 키아프서울에서 개막 첫날 그림이 완판되는 바람에 갤러리부스에서 ‘싸움’이 벌어졌을 정도다.


문제는 이러한 호황의 징후 속에 미술품 투자가 ‘묻지 마’식 과열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B 작가의 경우 여전히 수작(秀作)은 억대에 거래되지만 3억 9,000만 원에 거래되던 작품이 9,600만 원으로 급락하는 수모의 시기를 거쳤다. A 작가도 현재 연간 거래액은 2억~3억 원 이하로 추락한 상태다.


미술 투자는 그림에 대한 애호를 기반으로 하기에 ‘10년 이상 장기 투자’가 정설로 통한다. 작가 관리에 철저한 갤러리의 경우 판매 계약서에 ‘3년 이내 경매 출품 등 재판매 금지’ 조항을 넣기도 한다. 급속한 손바뀜은 투자가 아닌 투기의 신호로 해석된다. 지난 8월 경매에서 31억원에 팔려 국내 생존 작가 최고가 기록을 쓴 이우환의 ‘동풍’이 2개월 만에 열린 키아프에 다시 나온 것을 두고 시장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한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과거 호황 때도 ‘누가 사라더라’에 의존해 눈이 아닌 귀로 그림을 사는 경향이 팽배했고 투기 세력의 과다 유입이 시장 버블로 끝을 맺었는데, 이후 미술 수요자들이 학습 효과를 얻었음에도 지난 날의 패착을 반복하는 조짐이 보인다”면서 “내년 대통령 선거 이후 각종 경제정책의 변화로 인한 유동성 변화가 변수이기에 새로이 유입된 미술 수요자들을 위한 체계적인 시장 전망, 정확한 시장정보가 제공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미술경영학회를 이끄는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2007년에는 영국의 유망 작가그룹 YBA에 빗댄 한국의 ‘YKA’라 불릴 정도로 젊은 작가들의 활약이 막강했는데 그 중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하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지금의 호황을 장기적 미술시장 확장으로 이어가려면 시장의 신뢰도, 정보의 투명성이 필수이고 스타작가의 검증을 위해 공립미술관과 평단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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