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3세)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제 발걸음이 더 느려지기 전에, 아침에 제 숨소리가 더 잦아지기 전에 저와 손잡고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로 가달라”고 호소했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합의가 필요한 국제사법재판소(ICJ) 대신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유엔 고문방지협약(CAT) 절차를 밟고 해결하자는 주장이다.
이 할머니는 26일 대구 희움일본군위안부 역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2월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일본의 역사왜곡을 막기 위해 ICJ에 위안부 문제를 회부해달라고 대통령께 요청드렸지만, 11월이 돼 가도록 청와대도, 외교부도, 여성가족부도, 인권위원회도, 국회도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이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피해자 중심주의 해결을 강조했지만, 올해 초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2015년 졸속 합의를 국가간 합의로 인정하셨다고 한다”며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고 ICJ에 가고 싶지만, 일본 때문에 ICJ에 못간다면 일본의 동의가 없어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대통령님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그런데 우리 위안부 문제만큼은 전혀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크게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던져 주는 기만적인 그 돈은 우리에게는 극약"이라며 "국민기금이 바로 기만적인 돈이었고, 화해치유재단도 기만적인 기금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가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 위안부 문제를 가져가서, 일본이 위안소 제도를 만들고 운영한 것은 전쟁범죄였고, 반인륜 범죄였다는 명백한 판단을 받아 달라”고 요청했다.
한일 모두 고문방지협약(CAT)에 가입한 상태로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조정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고문방지협약을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서면 통보하면 일본은 3개월 내로 우리 정부에 관련 문제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을 제출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 정부는 통보 접수 후 6개월 이내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CAT에 ‘협약 위반’을 회부할 수 있다. CAT가 협약 위반이라고 판단하는 경우 협약 제30조 제1항에 따라 한국은 일본 정부의 동의 없이 한일 ‘위안부’ 문제를 ICJ에 회부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해 신희석 연세대 법학연구원 박사는 “한국은 2007년, 일본은 1999년 유엔 고문방지협약 제21조 제1항에 따라 CAT가 당사국 사이에 협약에 따른 의무 불이행에 대한 통보를 심리할 권능 인정 선언을 했다”며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의 동의 없이도 CAT의 국가간 통보에 따른 조정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위안부’ 문제가 고문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 박사는 “CAT는 과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제출한 고문방지협약의 이행에 관련된 정기보고서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권고를 내린 바 있다”며 “위안부 피해가 고문에 해당한다는 것을 CAT가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CAT는 지난 1990년대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여성들이 세르비아 민병대로부터 강간을 당한 사건에 대해서도 ‘고문 피해’라고 인정했다”고 부연했다.
한편, 지난 9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면서 현재 생존자는 총 13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