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대가(家) 후광효과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제약도 많았습니다. 이번 리브랜딩이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성환 에이치닥 대표는 26일 디센터와의 인터뷰에서 신규 메인넷인 ‘라이즌(RIZON)’의 출시를 알리며 이같이 강조했다. 에이치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인 정대선 HN그룹 사장이 2017년 설립한 블록체인 기술 기업이다. ‘현대’의 이름을 달고 업계에 등장한 만큼 설립 때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하지만 실제 내놓은 성과는 시장의 기대에 미치치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초에는 블록체인 기업을 타겟으로 한 세무조사의 첫 타자로 지목되며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도 입었다.
하지만 원 대표는 라이즌의 출시를 계기로 반전을 노리로 있다. 라이즌은 코스모스 블록체인의 텐더민트 엔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메인넷이다.
원성환 대표가 전임 주용완 전 대표에 이어 에이치닥을 이끈 건 지난해 10월부터다. 정대선 사장은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에이치닥 스위스 본사 지분의 100%를 보유하고 있다. 대표의 얼굴을 바꾼 후 에이치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원 대표는 “과거엔 범현대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으면서 여러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조심스럽게 사업을 진행했던 만큼 변화가 느렸던 것이 사실”이라며 “워낙 규제를 잘 지켜왔기 때문에 산업이 제도권으로 들어오고 있는 현재는 다른 국내 프로젝트보다 오히려 규제에 더 자유롭고 사업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무혐의로 종결된 세무조사에 대해선 정기적으로 진행된 조사에 불과했다고 선을 그었다. 원 대표는 “회사가 설립된 지 4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세무조사가 이뤄진 것은 전혀 새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에이치닥을 시작으로 클레이튼과 아이콘루프까지 세무조사를 받았다”며 “에이치닥이 대표적인 국내 프로젝트로서 처음으로 조사를 받은 것 뿐이고 문제 없다”고 덧붙였다.
에이치닥은 최근 출시한 라이즌 메인넷을 기반으로 다양한 블록체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분야는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결제 서비스다. 라이즌 메인넷 위에 발행된 자산유동화(asset-backed)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전 세계적인 결제 시스템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원 대표에 따르면 에이치닥은 그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해 여러 국내 은행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가 걸림돌이었다. 국내에선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사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오자 해외로 눈을 돌렸다. 에이치닥 본사가 위치한 스위스가 우선적인 목적지다. 지난 8월 에이치닥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신청 서류를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에 제출하고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원 대표는 “올해 연말 안에는 승인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대체불가능한토큰(NFT)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중점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분야는 한류 연예인을 활용한 NFT 엔터테인먼트 사업이다. 이를 위해 대형 기획사 출신 대표가 이끄는 국내 연예기획사와의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진출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도 진행 중이다. 한류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은 중동 지역의 한 대기업과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최근 여러 블록체인 기업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NFT 마켓플레이스의 경우 아직 출시 계획이 없다. 원 대표는 “거래 플랫폼보다는 콘텐츠 제작에 집중할 생각"이라며 “굳이 우리 마켓플레이스에만 팔겠다는 생각이 없고 다른 더 좋은 마켓플레이스가 있으면 협업을 통해 그쪽에 콘텐츠를 팔 수도 있다고 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신규 메인넷으로의 전환은 잘 진행되고 있을까. 에이치닥은 라이즌의 출시와 함께 기존 에이치닥(HDAC) 토큰을 라이즌 위의 아톨로(ATOLO) 토큰으로 바꾸는 토큰 스왑을 진행하고 있다. 라이즌이 런칭된 지난달 29일부터 내년 1월 6일까지 100일 동안 이뤄진다. 그러나 아직까지 스왑 진행률은 미진하다. 전체 HDAC 수량 중 18%의 스왑만이 완료됐다. HDAC 유통 물량의 대부분을 보유한 빗썸에서 아직 토큰 스왑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빗썸 토큰 스왑의 진행 상황을 묻자 원 대표는 “빗썸에 스왑 관련 가이드를 보냈고 이제 검토가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만간 빗썸에서 토큰 스왑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원 대표는 올해가 가기 전 에이치닥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 가지로 꼽았다. 첫 번째는 이제 막 출시된 라이즌 메인넷의 안정화다. 이를 위해 유망한 블록 밸리데이터를 발굴하고 다른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적극적으로 맺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으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ATOLO 토큰 스왑을 문제 없이 마무리하는 것이다. 빗썸과의 협업을 통해 빗썸에 남아 있는 고객들의 자산을 안전하게 이전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원 대표는 “에이치닥이 그동안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크게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라면서도 “많은 플레이어들이 존재하지만 아직 블록체인 산업은 초반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에이치닥은 다방면으로 장기적인 사업 모델을 구상하며 치고 나가려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