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신규 원자력발전소의 초기 건설 비용을 소비자와 분담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원전 건설에 필요한 자금의 일부를 전기 소비자에게서 마련하는 것으로, 현재 영국 내에서 추진되고 있는 신규 원전 건설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6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런던 북동부 지역 시즈웰에 건설될 예정인 ‘시즈웰 C 원자력발전소’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전기요금 청구서를 통해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이 방안은 소비자가 매달 받는 전기요금 청구서에 소액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그간 물과 가스, 전기 네트워크와 같은 대규모 인프라 건설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사용됐던 RAB(Regulated Asset Base) 모델 방식을 원전에 도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매달 1파운드를 낼 경우 원전 건설 과정에서 대출을 덜 받을 수 있어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 그럴 경우 원전이 가동될 때 소비자의 전기료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한 당국자는 “RAB 모델을 통해 원자력 프로젝트에 대한 민간 부문의 투자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소비자 부담을 낮출 수 있다”면서 “원전 가동 기간 동안 최소 300억 파운드(약 48조 3,700억 원)를 절감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현재 영국에서는 전체 발전량의 16%를 8개 원전이 담당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 노후한 상태여서 영국 정부는 1개 이상의 신규 원전을 건설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해 화력발전 단가가 올라가고 풍력발전의 전력 생산량이 기대에 못 미치자 영국의 발전 여유 용량이 위험할 정도로 작다는 우려가 나왔다.
현재 시즈웰 B 원전은 가동되고 있지만 시즈웰 A는 해체 중이어서 시즈웰 C 프로젝트가 시급한 상황이다. 이번 원전이 완공될 경우 지난 1990년대 이후 영국에 두 번째로 생기는 신규 원전으로 기록된다.
영국의 이번 방안이 현실화되면 프랑스 국영 에너지 회사인 EDF가 한층 유리한 입지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EDF는 이미 이 프로젝트의 예비 검토 작업을 마쳤지만 비용이 너무 크고 개발사가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 자금 조달 방식하에서는 참여가 꺼려진다는 입장이었다. EDF는 성명을 통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오는 2024년인 다음 총선 전에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디언은 이번 방안으로 중국 국영기업 중국핵전집단공사(CGN)를 확실히 배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7월 영국 정부는 앞으로의 원전 사업에서 CGN을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상태다. CGN은 시즈웰 원전 사업 등에 파트너사로 참여하고 있다.
한편 영국을 포함한 유럽 내에서는 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2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 2030’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원전 연구개발(R&D)에 10억 유로를 투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