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2년여 만에 최악의 한일 관계를 뚫고 사무라이본드(외국 기업이 일본에서 발행하는 엔화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미국 채권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외화 조달 채널을 다양화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롯데지주(004990)는 27일 85억 엔(한화 약 880억 원) 규모로 사모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했다. 이달 말 만기가 돌아오는 1,700억 원 규모의 달러 채권을 상환하기 위한 목적이다. 같은날 홍콩 시장에서 2년 만기 사모 달러화 채권도 7,500만 달러(약 878억 원) 어치 발행했다. 2년 만기 변동금리로 발행금리는 리보 6개월물에 80bp(1bp=0.01%포인트)를 가산한 0.976%로 결정됐다.
최근 달러채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자 추후 차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롯데 측이 일본 금융시장을 찾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3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0.753%까지 올라 지난달 말 0.511% 대비 약 24.2bp(1bp=0.01%포인트) 급등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탓인데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 2016년부터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유지해오고 있어 시중 채권 금리가 미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롯데지주의 이번 사무라이본드 발행은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 관계가 최악 상황으로 치달은 후 처음 성공한 것이어서 국내 자본시장의 관심을 모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일 갈등이 깊어지며 일본 내에서 투자 수요를 확보하기 어려워져 사무라이본드 발행은 2019년 7월 KT 이후 2년 3개월 만이다. 이후 한화케미칼과 KT 등은 엔화 채권 만기가 돌아올 때 사무라이본드 대신 달러화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갚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매년 일본에서 투자자들과 금융권 관계자들을 상대로 투자 설명회를 진행하며 미즈호은행·노무라증권 등 주요 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특히 미즈호은행은 2019년까지 일본 롯데홀딩스가 72.7%의 지분을 보유한 호텔롯데와 계열사를 중심으로 사모 회사채는 물론 공모 회사채 청약 등에 관여했다.
대형 증권사의 한 기업 자금 조달 담당 임원은 “최근 2년간 국내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일본계 자금 조달의 메리트가 줄었지만 최근 금리가 다시 상승 추세로 접어들고 있어 롯데가 이번에 사무라이본드 발행에 성공한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