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준비' CPTPP 가입, 정치논리에 주춤

의장국 日 '후쿠시마 수산물 허용'
CPTPP 가입 조건으로 거론하자
與, 표심 악화 우려 속도조절 주문
"국익 보다 정치셈법 우선" 지적도


정부가 8년간 준비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이 대선 정국을 앞두고 정치 논리의 암초에 부딪혔다. 협정 의장국인 일본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 해제 등을 가입 조건으로 거론하자 국내 민심 악화를 우려한 여당이 정부에 속도 조절을 주문한 것이다.


1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CPTPP 가입 신청 시기를 놓고 관계 부처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협정 가입 신청을) 10월 25일께 열리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10월 가입 신청을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10월에 이어 이날로 예정됐던 대외경제장관회의도 연달아 연기되면서 가입 신청은 당초 계획보다 지연되고 있다.






정부가 가입 신청을 미루는 표면적인 이유는 부처 간 이견이다. 11개국이 참여하는 다자 간 협정인 데다 최근 중국과 대만이 잇달아 가입을 신청하면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해외 일정을 소화 중인 홍 부총리를 비롯해 대외경제장관회의 주요 참석자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점도 감안했다.


하지만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협정 가입을 위한 부처 간 논의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당초 올해 1월부터 연내 가입 신청을 목표로 부처 간 협의를 진행해왔다”며 “디지털과 국영기업 등 4대 분야의 국내 규범을 CPTPP에 규정된 수준으로 조율하는 게 관건이었는데 이 역시 대부분 논의가 정리된 상태”라고 귀띔했다. 중국과 대만의 참전도 가입 신청 시기를 늦출 만한 변수는 아니다. 홍 부총리가 10월 가입 신청을 언급했던 당시도 중국과 대만이 가입 신청을 밝힌 뒤였다.


정부가 실무 준비를 마쳤음에도 가입 신청을 미적거리는 것은 의장국인 일본과의 양자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한국이 CPTPP 가입을 타진하자 한일 간 현안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창구를 통해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한국이 먼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 등을 풀어야 가입 여부를 논의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CPTPP 가입을 한일 현안과 연동하려는 조짐이 감지되면서 국회도 협정 가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최근 정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CPTPP를 계기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경우 민심이 악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협상 과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이 정부에 속도 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당정 간 조율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는데 홍 부총리가 (가입 신청을 시사한 것은) 조금 앞서나간 측면이 있다”고 했다.


협정 가입 신청 시 농어민들의 반발이 클 수 있다는 점도 여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점이다. 이 때문에 당초 계획과 달리 정부의 CPTPP 가입 신청이 내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농민 단체의 한 관계자는 “CPTPP에 가입한다는 정부 기조 자체가 바뀌지는 않은 것 같은데 농업계 반발이 크니까 발표 시기를 고민 중인 것 같다”며 “대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후쿠시마 수산물 금수 조치 해제 여부는 일단 협정 가입을 신청한 뒤 한일 양자 간 협상 과정에서 조율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 “협상 시작도 전에 (금수 조치가 해제될 수 있다고) 결과를 예단해 신청을 주저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