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006280)가 간판제품을 앞세워 해외 희귀의약품 시장 공략을 가속화한다. 전 세계 최초로 제형을 변경한 헌터증후군 치료제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 진출 가능성을 인정받으면서 경쟁력을 한층 높였다. 희귀의약품 시장의 특성을 간파하는 선구안과 뚝심 있는 연구개발(R&D) 투자가 시너지를 냈다.
녹십자는 뇌실 내 투여 방식의 중증형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ICV’가 유럽의약청(EMA)으로부터 희귀의약품지정(ODD)을 받았다고 2일 밝혔다.
‘헌터라제ICV’는 정맥주사(IV) 방식의 ‘헌터라제’의 제형을 변경한 헌터증후군 치료제다. 머리에 디바이스를 삽입해 약물을 뇌실에 직접 투여하는 방식이다. 앞서 녹십자는 지난 2012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헌터라제’ 정맥주사 제형의 시판허가를 받았다. 사노피젠자임의 '엘라프라제'에 이어 전 세계 2번째로 헌터증후군 치료제의 상업화했다. 이후 환자의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하지 못해 뇌실질 조직(Cerebral Parenchyma)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정맥주사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헌터라제'의 제형 변경 연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헌터라제ICV’의 품목허가를 획득하면서 전 세계 최초로 헌터증후군의 뇌실 내 투여 치료법 개발에 성공하는 쾌거를 거뒀다.
녹십자에 따르면 유럽 규제기관은 ‘헌터라제ICV’가 기존에 승인 받은 정맥주사 제형 대비 환자에게 상당한 혜택을 줄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일본에서 진행된 임상에서는 중추신경손상의 핵심 원인 물질인 헤파란황산을 70% 이상 감소시키는 동시에 발달 연령 개선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는 결과를 확보한 바 있다. 이번 희귀의약품 지정으로 일본에 이어 유럽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선천성대사이상질환의 일종인 헌터증후군은 남아 10만~15만명 중 1명의 비율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2형 뮤코다당증'이라고도 불린다. 이두설파제라는 효소의 결핍이 원인인데,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은 골격이상, 지능저하 등 예측하기 힘든 경과를 보이다가 15세 전후에 조기 사망할 만큼 예후가 불량하다. 의약품시장 관점에서 보면 비록 환자수는 적지만 경쟁약물이 많지 않은 데다 가격이 비싸고 평생 투여받아야 하기 때문에 안정적 매출이 보장된다는 장점을 갖췄다. 녹십자는 이번 희귀의약품 지정을 계기로 ‘헌터라제ICV’의 유럽 진출 가능성을 본격 타진한다. 녹십자는 일찌감치 중남미, 북아프리카 등 '헌터라제'의 해외시장 활로를 개척했다. 전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만 환자수가 제한적인 국내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실제 '헌터라제'의 해외 실적은 회사의 쏠쏠한 수익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녹십자에 따르면 '헌터라제'의 지난 3분기 매출은 23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5% 성장했다. 그 중 174억원이 해외 매출이다. '헌터라제'의 3분기 해외 실적이 2배 이상 성장하면서 처방의약품 사업 부문 실적이 32.6%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회사 측은 '헌터라제'가 해외 시장 영향력을 키우면서 고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헌터라제'는 작년 10월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의 품목 허가를 받으면서 아시아 시장 진출의 물꼬를 텄다. 현재 중국 보건당국과 가격협상 절차를 진행 중으로, 연내 상업화가 유력하다. 올해 2월에는 일본 후생노동성(MHLW)으로부터 '헌터라제 ICV'의 품목허가를 받고, 5월부터 처방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해외 매출 기복이 큰 상태여서 즉각적은 성장이 포착되진 않지만 차별화된 제형으로 긍정적인 시장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은철 녹십자 대표는 "이번 희귀의약품 지정을 통해 '헌터라제ICV'가 헌터증후군 환자들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할 수 있음을 또 한번 증명했다"라며 "전 세계 헌터증후군 환자의 삶의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