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로제를 비롯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문재인 정부 들어서 쏟아져나온 친노동 정책이 오히려 기업과 자영업자들에게 가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사이에서는 ‘친노동에 기울어진 운동장’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지난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면서 현장에서는 인력난이 더욱 심해진 데다 최근 몇 년 동안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해 경영난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쏟아지는 친노동 정책은 기업들의 목을 더욱 조이고 있다. 여기에 내년 1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예정이어서 영세 중기의 고충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기업 등 산업계에서는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기업 활동에 제약이 크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재계 단체들은 이 법에서 정한 기업의 의무가 불명확하며 과잉 처벌할 우려가 높다고 지적한다. 9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시행령 제정안은 ‘적정한 예산’ ‘적정한 안전 수행 기간’ ‘적정 규모로 안전·보건 인력 배치’ 등 일부 모호한 문구를 삭제하고 세부 사항을 정했지만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문구를 포함하고 있다. 기업인이 중복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경제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7일 발표한 경제 부처 16곳 소관 법률 721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 위반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을 규정한 항목은 총 6,568개였다. 이 가운데 징역이나 벌금, 과태료, 과징금, 몰수, 징벌적 손해배상 등 처벌 및 제재를 2개 이상 중복으로 부과할 수 있게 한 항목은 전체의 36.2%인 2,376개에 달했다. 중복 처벌 가능 항목 가운데 2중 처벌이 가능한 항목은 1,561개(23.8%), 3중 처벌은 714개(10.9%), 4중 처벌은 41개(0.6%) 등이었다. 특히 5중 처벌이 가능한 항목도 60개(0.9%)나 됐다.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행위 금지를 규정한 자본시장법 제174조 1항을 위반하면 징역·벌금·자격정지·몰수·과징금 등 5중 처벌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과잉·중복 처벌의 대표 사례로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을 꼽았다.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아 중대 산업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 경영책임자(CEO)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는데 징역에 상한이 없고 징역과 벌금을 동시에 부과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법인도 처벌이 가능해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이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내기도 한다고 했다.
전경련은 과도한 처벌 사례 중 하나로 공정거래법 일부 조항도 지적했다. 공정위가 매년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친족 등 특수관계인 현황, 주식 소유 현황 등 지정 자료를 요구하는데 거짓 자료를 제출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내용이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과도한 처벌 조항이 경영자·기업을 전과자로 만들고 있다”며 “기업가 정신 제고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위해 과도한 형벌 수준을 낮추거나 중복 처벌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정책본부장은 “뿌리 산업의 경우 아무리 채용 공고를 내도 내국인 근로자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친노동법이 오히려 친노동 규제로 작용해 기업 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추 본부장은 이어 “7월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주 52시간 근로제까지 도입됐다”며 “현재도 중소기업들에 부담이 큰 규제와 정책이 가득한데 기업을 옥죄는 법안들이 추가로 이어지면 중소기업의 고충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