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내년 예산안과 만성적 재정위험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코로나 명분 지출확대 밀어붙여
文정부 5년간 나랏빚 408조 증가
세출구조조정·세입확충 병행해
재정정상화 노력으로 위기 막아야







지난달 25일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국회가 오는 2022년 예산안 심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다른 어느 때보다 이번 심사는 엄정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우리 재정 여건이 이전과 전혀 다른 심각한 상태에 놓였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이후의 높은 재정 지출 증가율이 4년째 계속되고 있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이번 정권이 코로나19를 명분으로 정부와 국회에서 지출 확대를 공공선으로 밀어붙인 결과다. 덕분에 재정 규모는 5년 만에 50%에 가까운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 내년에는 본예산만 604조 원에 이른다. 이 기간 증가한 예산의 거의 절반(45%)은 보건·복지·고용 분야에서 발생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지출 증가를 반겨야겠으나 실은 걱정만 앞선다.


이번 정부에서 총지출이 약 200조 원 늘어나는 동안 재정 조달의 주 수입원인 국세는 고작 135조 원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그사이 부족한 재원은 나랏빚으로 충당해왔다. 늘어난 국가 채무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다.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까지 5년에 걸쳐 늘어나는 나랏빚이 무려 408조 원 규모다. 매년 국가 채무가 10%씩 늘어난 결과 경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비율이 2017년 36%에서 2022년 50%로 14%포인트나 높아진다. 2004년 이후 13년간 3개 정부를 거치며 오른 채무 비율의 상승 폭과 동일한 셈이다.


정부는 코로나19 비상 상황 탓이라고 변명하나 2020년 한 해만 -0.9%의 성장률을 기록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경제적 충격은 성장률이 -5.1%까지 하락했던 외환위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전 산업에 걸친 기업 구조 조정이나 막대한 공적 자금 투입도 없었다. 그런데도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7년부터 공적 자금 국채 전환이 완료된 2006년까지 9년간 증가한 채무 비율(16.7%포인트)에 필적하는 나랏빚이 코로나19 전후의 5년 동안 늘어났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투입된 재정은 국가 부도와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고 기간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견인하는 데 이용됐다. 2000년 이후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었으니 국가 재정의 온당한 소임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채무 증가는 국가 경제가 붕괴될 지경에서 재정이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수많은 논란 속에 확대 재정이 연속 편성되는 가운데 코로나19 사태까지 발생해 막대한 재원이 투입됐으나 재정이 여러 갈래의 파편으로 흩어져 주된 쓰임새가 무엇인지 명료하지 않으며 실질적인 경제적 효과 또한 제대로 가늠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최근 재정 운용이 초래한 막대한 재정 적자가 향후에 사라지지 않고 고착화된다는 점이다. 정부 중기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연속 2년간 GDP 대비 6%에 이른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내년은 물론 앞으로 계속 4% 중후반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됐다. 외환위기 비상 상황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던 대규모 재정 적자가 코로나19 이후에 아예 만성적인 재정 위험으로 구조화됨을 의미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년에 1,000조 원 이상으로 누적된 국가 채무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2025년에는 1,400조 원, 그리고 2030년에는 2,200조 원까지 급증한다고 예측한 것은 우리 재정이 유지 가능하지 않은 경로에 이미 진입했음을 경고한 것이다. 상황이 위급한데도 정부가 세출 구조 조정과 세입 확충 같은 재정 정상화 노력을 보이지 않고 국회마저 이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새 정부에서는 국가신용 등급의 강등이, 그리고 늦어도 그다음 정부에서는 재정 위기 가능성이 필연적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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