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가상자산의 공제 한도를 주식처럼 5,000만 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내년 1월로 예정된 가상자산의 과세를 1년 유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데 이어 소득공제액 인상 카드까지 꺼낸 것이다. 3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2030의 표심을 잡으려는 조치인데 정부는 가상자산 공제 한도의 상향이 오히려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9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가상자산 소득공제 한도를 5,000만 원으로 파격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내년 시행 예정인 공제액 250만 원의 20배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가상자산 소득공제 한도를 5,000만 원으로 높이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이뤄지고 있다”며 “250만 원 공제보다는 5,000만 원 공제가 2030세대에 소구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층에 가상자산 투자 인구가 집중된 만큼 수익에 대한 넉넉한 공제안을 제시해 청년 표심을 끌어오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도 “당 정책위와 민주연구원에서는 (공제 한도 상향과 관련해) 큰 틀에서 정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정책 싱크탱크다.
인상 방법은 소득세법상 ‘기타소득’ 안에 가상자산에 대한 예외 조항을 두는 쪽으로 고려되고 있다. 가상자산 수익은 현행 소득세법에도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있다. 이 법이 명시한 기타소득의 공제 상한은 250만 원이다. 이에 따라 ‘기타소득 중 가상자산 수익의 경우 예외적으로 5,000만 원까지 공제한다’는 조항을 따로 마련하자는 것이 민주당의 구상이다.
민주당이 가상자산 수익을 금융투자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유지하기로 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가상자산을 정식 금융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부 의지가 아직 강한 데다 금융자산으로 정의하더라도 파생상품으로 간주된다면 250만 원까지만 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는 2023년 도입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는 해외 주식과 파생상품의 수익 공제액을 250만 원으로 정하고 있다. 국내 상장주식 수익은 5,000만 원까지 공제된다.
가상자산의 소득공제 한도를 높이자는 요구는 당내에서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전날 라디오(MBC) 방송에서 가상자산에 매겨지는 세금과 관련해 “납세자 수용성이 있어야 한다”며 “소득공제 범위가 금융소득은 5,000만 원까지인데 가상자산은 250만 원까지로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연구원 원장인 노웅래 의원도 지난 7월 가상자산 수익 5,000만 원까지는 과세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책위나 민주연구원의 제안이 당 대선 후보 공약이나 당론 채택의 기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 의장과 노 의원의 주장은 무게감이 있다.
야당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노 의원안과 같이 가상자산 공제 한도를 5,000만 원으로 정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는 공제액 인상에 반대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민주당 가상자산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공제 한도를 갑자기 확 높이면 시장 유입자가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며 “국내 시장에는 ‘트래블 룰(가상자산 송수신자 거래 보고 규칙)’도 갖춰지지 않았는데 유입이 급증할 경우 부작용이 속출할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다.
정부 역시 부정적이다. 금융투자소득세에서 국내 상장주식(5,000만 원)을 제외하고 해외 주식, 비상장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은 모두 기본 공제 금액이 250만 원이어서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국내 상장주식만 공제 금액을 높인 건 국민들의 자산 형성 지원뿐 아니라 자본시장에서 원활한 자금을 조달하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비트코인과 삼성전자 주식을 동일 선상에서 놓고 볼 수도 없고 단순히 개미들이 투자를 많이 한다고 공제 한도를 상향하면 앞으로 서학개미가 늘어날 경우 해외 주식도 덩달아 높여야 한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가상자산을 국내 상장주식과 같은 수준으로 보호·육성해야 할 투자 대상인지 보면 논리적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가상자산 과세를) 조정 또는 유예하는 건 법적 안정성이나 정책의 신뢰성 측면에서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