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 이야기 새겨진 적벽돌 따라…100년전 근대路 가다

대구건축문화기행 '브릭로드'
원도심의 한적한 골목을 걷다보면
계산성당·선교사 사택·화교협회 등
고풍스런 100년 전 풍경이 눈앞에
교회 건축·항일운동 역사도 오롯이

브릭로드 출발지는 대구 원도심에 자리한 계산성당이다. 계산성당은 서울 명동성당과 평양 관후리성당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서양식 성당이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도시의 풍경에서 가장 변화가 더딘 곳을 찾으라면 골목이다. 화려하고 북적이는 거리 이면에는 어디나 한적한 골목이 이어진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굵직한 사건 사고까지 도시의 오랜 역사를 만나볼 수 있다.


대구시가 단계적 일상 회복에 맞춰 ‘건축문화기행’이라는 이름으로 신규 골목 투어 코스를 내놓았다. 그 첫 번째 코스가 근대 건축물을 둘러보는 ‘브릭(Brick)로드’다. 브릭로드는 대구의 원도심이라고 불리는 중구의 근대 문화유산 중 적벽돌로 지어진 건축물을 찾아가는 골목길 여행 코스다. 원도심의 낡고 허름한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다 보면 선교사들이 세운 대구 최초의 서양식 성당과 사택, 화교협회 건물까지 100년 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점토 벽돌이라고도 불리는 적벽돌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전후다. 초창기 선교사들은 한옥을 대신해 적벽돌로 된 서양식 교회나 성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건축물이 지난 1892년 세워진 명동성당이다. 그 이후 적벽돌은 일반에 전해져 고급 건축 재료로 사용됐고 오늘날 브릭로드를 잇는 근대 건축물들이 그렇게 하나둘 대구 골목길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 대면 종교 활동이 자유로워지면서 평일 계산성당을 찾은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대구에 등장한 최초의 서양식 건물…김수환 추기경, 안중근 의사의 흔적도


안내 지도에 나온 코스 대신 건축물이 세워진 순서에 따라 브릭로드를 둘러본다면 출발점은 계산성당이다. 계산성당은 서울 명동성당과 평양 관후리성당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서양식 성당이다. 초기 계산성당은 한옥식 목조 건물이었지만 1년 만인 1901년 불에 타 소실되고 1903년 현재의 계산성당이 적벽돌 건물로 지어졌다. 명동성당처럼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인데 명동성당 설계자와 인부들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계산성당 신자들은 인근에 벽돌 공장을 짓고 성당 건축을 위한 벽돌 수만 장을 찍어냈다고 한다.



계산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진 김대건 신부.

이렇게 세워진 성당은 대구와 경북에서 유일한 서양식 건물로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초가집이 대부분이던 일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외부에는 쌍탑이 우뚝 솟아 있고 내부는 프랑스에서 공수한 스테인드글라스와 파이프 오르간이 장식했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12사도와 김대건 신부 등 한복을 입은 한국 순교 성인이 새겨져 있다. 성당 앞 공원에는 초대 주임 신부인 아실 폴 로베르(김보록) 신부를 추모하기 위한 흉상이 세워졌다.



계산성당 초대주임 신부 로베르(김보록) 신부 흉상.

계산성당은 한국 교회 건축사뿐만 아니라 대구 근현대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수환 추기경이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계산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성직자로서의 삶을 시작했고 계산성당 내 교육기관으로 설립된 해성재(海星齋)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신자를 대상으로 강의하기도 했다. 계산성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1950년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두 사람 모두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전쟁 중 마땅한 장소가 없어 성당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라언덕에 자리한 선교사 주택은 외부에 개방된 공간으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책 코스다.

언덕 위 붉은 벽돌집은 의료 선교의 출발지


계산성당 건너편은 청라언덕이다. 청라언덕으로 가려면 반드시 3·1만세운동길을 통과해야 한다. 총 90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이 길은 3·1 만세 운동을 준비하던 학생들이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모여들었던 역사적인 현장이다. 학생들은 인근 서문시장으로 몰려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는 만세 운동이 경상북도 전체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좁고 오래된 계단 옆 담벼락에는 당시를 재현한 벽화와 태극기가 걸려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계산성당 너머로 대구 시내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청라언덕으로 연결된 ‘3·1만세운동길’은 90개 계단으로 이뤄져 있다.

목적지는 청라언덕에 자리한 개신교 선교사들의 사택이다. 1905~1910년 사이에 지어진 3채의 ‘선교사 주택’은 이곳에 살던 선교사들의 이름을 따 각각 ‘챔니스주택’ ‘스윗즈주택’ ‘블레어주택’으로 이름 지어졌다. 건물 외관은 계산성당처럼 적벽돌을 사용했지만 미국에서 건너온 선교사들은 당시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의 유행에 따라 베란다가 딸린 방갈로풍 건축에 기와 지붕을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건물들은 각각 선교·의료·역사를 테마로 한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청라언덕 선교사 주택 중 하나인 스윗즈주택은 여성 선교사 마르타 스윗즈가 살던 곳이다.

이곳의 선교사들은 종교 활동뿐만이 아니라 근대 의료와 교육을 함께 전개했다. 1899년 현 계명대 동산의료원의 효시인 제중원을 설립해 서양 의술을 전파했고 나환자와 군인, 전쟁 고아를 대상으로 의료 지원 활동을 펼쳤다. 제대로 된 교회 건물이 세워진 건 이보다 한참 뒤의 일이다. 최초 남성정 예배당으로 출발한 대구제일교회는 1933년 대구제일교회 기독교역사관 자리에 적벽돌로 쌓은 2층짜리 예배당을 세웠다. 현재 청라언덕에 있는 화강암으로 된 교회는 1994년 옮겨온 새성전이다.



스윗즈주택 뒤로 대구제일교회 첨탑이 높게 솟아 있다.

선교사 주택 주변은 정원으로 조성돼 있다. 그 중 스윗즈주택 앞 사과나무는 초대 제중원 병원장 우드브리지 존슨 박사가 1899년 미국에서 들여온 나무의 후계목이다. 당시 들여온 수십 그루의 사과나무는 한국인들에게 선물로 전해지면서 대구를 능금의 도시로 키워냈다. 언덕 아래쪽에는 선교사와 그 가족들의 묘지인 은혜의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성유스티노 신학교는 계산성당을 설계한 빅토르 푸아넬 신부의 작품이다.

‘금녀의 공간’ 신학교, 순례지이자 단풍 명소로 열리다


길 건너 인쇄 골목으로 들어서면 대구가톨릭대의 모태인 성유스티노 신학교를 마주하게 된다. 대구교구 초대 교구장이던 플로리앙 드망주 주교가 1914년 개교한 이 신학교 건물 역시 명동성당과 계산성당을 설계했던 빅토르 푸아넬 신부의 작품이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5년 폐교되기까지 67명의 사제를 배출했고 1991년부터는 대구가톨릭대 대구관구 대신학원으로 쓰이고 있다.



성모당을 찾은 한 부부 순례객이 기도하고 있다. 성모당은 프랑스 루르드 마사비엘동굴을 본 따 만들어진 국내 대표 천주교 성지다.

신학교는 금녀의 공간이다. 성유스티노 신학교는 지금까지 100년 넘는 역사 중에서 유일하게 단 한 명에게만 출입을 허용했는데 그 주인공이 배우 하지원이다. 2004년 영화 ‘신부수업’ 촬영차 기숙사를 찾았다고 한다. 이후 영화 ‘박쥐’, 드라마 ‘각시탈’의 배경이 되면서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신학교 주변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과 성모당, 샬트르성바오로 수녀원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100년 전통의 ‘가톨릭 타운’으로 조성돼 있다.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순례지이자 기도처로, 비신자에게는 영화 촬영지이자 단풍 명소로 각인돼 있다.



화교협회는 주변 상권과 분리된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대구화교협회 건물은 대구 지역 부호인 서병국이 의뢰해 지어진 적벽돌의 2층 서양식 주택이다.

‘부자골목’ 끝자락엔 작은 차이나타운


브릭로드의 마지막 목적지는 대구 최고의 부자들이 모여 살던 진골목 끝자락에 자리한 대구화교협회·대구화교소학교 건물이다. 화교협회는 1929년 지어진 적벽돌의 2층 서양식 주택이다. 대구의 부호였던 서병국이 거주 목적으로 중국 건축가에게 설계와 시공을 맡겨 지었는데 완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병국이 사망하면서 대부분 화교협회 사무실로 쓰이게 됐다. 바로 앞 건물은 화교소학교로 차이나타운에 온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관덕정 순교기념관 앞에 세워진 천주교 성인 이윤일 동상.

브릭로드에서 빠져 있지만 관덕정 순교기념관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대구의 근대 건축물이다. 관덕정(觀德亭)은 조선 시대 무과를 치르던 관청이자 처형장으로도 쓰인 곳이다. 이곳에서 성인 이윤일 등 천주교인들 뿐만 아니라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한 동학(천도교) 창시자 최제우가 처형되기도 했다. 최제우 순도비는 길 건너 현대백화점 앞에 서 있다.



옛 교남 YMCA 회관.

관덕정 인근 불교 사찰 보현사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다. 동화사의 포교당으로 세워진 보현사는 1919년 3월 30일 덕상정(남문 밖) 시장 만세 운동이 일어나기 전 서울에서 유학하던 대학생들이 내려와 학승들과 만세 운동을 결의했던 곳이다. 이외에도 옛 교남 YMCA 회관과 제일교회 역사관 역시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적벽돌의 근대 건축물로 화교협회와 함께 둘러보면 좋다.


브릭로드는 화교협회에서 출발해 계산성당과 선교사주택, 계성중학교, 성유스티노 신학교, 성모당으로 이어지는 총 3.8㎞짜리(1시간 소요) 코스다. 마지막 목적지인 성모당에서 반월당으로 넘어오면 코스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인근 근대 건축물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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