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 심리' 더 강해지는데…정부·한은 속수무책

기대인플레이션 9개월째 2%대
10월 물가 급등 따라 더 오를 듯
임금·가격 인상 '2차 파급' 불러
원자재값 상승·공급 병목 문제 등
물가 불안요소 선제적 관리 필요
“정부·한은에 신뢰 없으면 잡기 어려워”

통계청이 2일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2% 올라 근 10년 만에 첫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석유류 물가가 27.3%, 달걀 또한 33.4% 오르며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사진은 2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성형주 기자 2021.11.02

향후 1년 뒤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전망하는 기대인플레이션이 짧은 기간 급등하면서 9개월째 2%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2%로 9년 9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만큼 기대인플레이션도 덩달아 오를 가능성도 커졌다.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면 실제 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요소수 공급 차질 등 각종 물가 불안 요소를 조기에 해결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0월 기대인플레이션은 2.4%로 올해 1월(1.8%) 대비 0.6%포인트 상승해 지난 2018년 12월(2.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1년 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 이상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한 응답자 비중은 올해 1월 20.9%에서 올 10월 30.9%로 10%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1% 미만을 예상한 응답자는 19.6%에서 8.7%로 급감했다.


한은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기대인플레이션은 향후 물가를 정확히 예상하기보다 과거나 현재 물가 상승률 등 과거지향적 지표가 반영되는 경향이 크다. 한은은 최근 국제 유가, 공공요금 등 체감 물가가 많이 오른 만큼 추가 상승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난해 통신비 지원 기저 효과에 10월 소비자물가가 3.2% 급등한 만큼 이달 기대인플레이션은 현 수준보다 오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문제는 기대인플레이션이 임금 협상, 가격 설정, 투자 결정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실제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앞으로 물가가 더 오른다고 생각한 가계는 실질 구매력을 확보하기 위해 임금 상승을 요구하고, 기업은 제품 가격을 올리게 된다. 임금·가격 인상 등 2차 파급 영향이 나타나면 소비자물가 상승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하면 실제 물가 변동성도 커지기 때문에 한은의 물가 안정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통화정책 신뢰도마저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물가 안정 목표인 2% 수준에 안착시키기 위해 선제적인 기대인플레이션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역시 기대인플레이션 관리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최근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국내외 물가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과도한 기대인플레이션 심리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지속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물가 상승세가 내년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상 기대인플레이션을 단기간에 안정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선박 공급 부족으로 인한 해운 물류대란 등 공급 병목현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대내외적으로도 요소수 등 각종 공급 차질 문제가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대인플레이션에 크게 영향을 주는 국제 유가나 곡물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내년 경제전망을 통해 “최근 원자재 가격을 중심으로 생산자물가가 빠른 속도로 상승해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대인플레이션 관리를 위해 한은이 보다 적극적이고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물가 상승이 일시적일 것으로 예상한 한은은 지난달 말 “높은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올 2월 1.3%에서 올 8월 2.1%로 수정했는데 이달 경제전망에서 한 번 더 올려 잡겠다는 방침이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와 한은이 요소수 등 각종 공급 문제를 해결하고 물가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기대인플레이션이 점차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가 공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한은이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기대인플레이션은 앞으로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