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레터에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홀로 남은 벨루가, '벨라' 이야기(다시보기)를 전해드렸었죠. 이번에는 후속 소식을 들고 왔어요. 한줄 요약하자면 롯데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고, 내년 중으로는 생추어리(=야생 방류 전 단계)로 보낼 계획이란 이야기. 하지만 만만찮은 과정이 될 것 같아요. 애초에 전시를 위해 동물을 괴롭히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왜 아직도 1년이 더 걸리는 걸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롯데 측의 설명부터 정리해볼게요.
롯데는 지난 5일에 아예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식 입장과 앞으로의 절차에 대해 설명했어요.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의 고정락 관장님과 관계자 분들, 벨라 방류를 위해 2019년 만들어진 '방류기술위원회'에 속한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님과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님, 해양수산부 장유경 사무관님,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 손호선 박사님 등도 참석.
롯데의 설명에 따르면, 최종 목표는 야생 방류(=자유로운 바다에 풀어주기)예요.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총 7단계를 거쳐야 한대요. ①벨라가 바다에서 충분히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건강평가 ②벨라가 살 수 있는 바다가 어디인지 방류지 평가(수온, 먹이, 같이 어울려 살 친구들 등이 알맞은 곳) ③벨라가 바다에서도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 ④그 다음에는 아쿠아리움 수조에서 벗어나 사람과의 접촉이 최소화되는 '방류 적응장'으로 이동 ⑤방류 적응장에서 지내면서 바다로 나갈 준비 ⑥이제 정말 바다에 나갈 수 있다고 방류 적합성 판정을 받으면 ⑦드디어 넓은 바다로!
위의 표처럼, 벨라는 지금 건강을 돌보면서 야생 적응 훈련(3번 단계)을 하는 중이에요. 수조에 활어를 들여보내서 벨라가 사냥법을 익히도록 한다거나, 느린 활어를 빠른 활어로 바꿔서 벨라의 사냥 기술을 더 훈련시킨다거나 하는 과정들이죠. 그리고 롯데는 아이슬란드, 캐나다 등지의 방류 적응장과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어디로 벨라를 보낼 수 있을지 검토 중이고요. 상대 측의 입장(=보안유지협약 등등)도 있기 때문에 현재 단계에선 '어디로 보낸다'고 공개하지 못하는 상황이래요.
이 외에도 참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해외 고래류 전문 수의사와의 협업을 통한 건강 평가, 벨라를 어느 바다에 풀어놓을 수 있을지 각종 연구(벨루가 개체군 분포와 유전자 계군 분석 등등), 벨라의 바다 생태계 적응을 위한 추가적인 훈련(다른 고래류 영상 보여주고 반응 체크 등등)까지. 방류기술위원회에 소속된 전문가들은 2020년 1월에 이미 아이슬란드 방류적응장도 둘러보고 왔대요. 벨라를 돌봐 온 정지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생물보전팀장님과 고정락 아쿠아리움 관장님은 "벨라의 행복이 최우선"이라고 몇 번씩 강조했구요.
지난 2019년 벨라의 방류를 결정한 후 이렇게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에 대해, 정지윤 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벨루가는 돌고래와도 또 다른데, 국내외에 사례가 많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경우엔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 '제돌이'를 제주도 함덕 앞바다에 방류한 사례가 유일한데 벨라(=북극 출신)는 따뜻한 제주도 바다와 맞지 않구요. 정 팀장님은 "벨루가가 갈 수 있는 방류적응장은 현재로선 아이슬란드가 유일하다"며 "그 곳으로 간 벨루가(=창펑수족관의 벨루가 두 마리)는 아이슬란드로 가기까지 총 6년이나 걸렸다"고 설명하셨어요.
고정락 관장님도 덧붙여 설명하셨어요. "사람마다 특징이 다르듯, 벨루가들도 개체마다 성격도 습성도 달라요. 어떤 개체는 빨리 적응하지만 어떤 개체는 아예 적응을 안 하려고 들어요. 그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진행하면 방류에 실패할 수밖에 없고요."
한 번 갇힌 벨루가에게 자유를 돌려주기가 그만큼이나 어렵단 이야기예요. 전채은 대표님 역시 "방류는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이고, 심지어 벨루가를 방류적응장으로 보낸다 해도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설명하셨어요.
질의응답을 통해서도 정말 구체적이고 자세한 이야기가 오갔는데, 많이 길지만 꼭 읽어보길 추천드려요.
롯데가 이런저런 설명과 계획을 공개한 후, 그동안 벨루가 문제에 앞장서 온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에서는 성명(읽어보기)을 발표했어요. 애초에 올해 말까지 방류적응장으로 벨라를 보내겠다던 롯데가 또 1년을 연기했단 점에 실망이 큰 분위기. 방류적응장으로 가기 전까지 벨라는 계속 갇혀서 '전시'돼야 하니까요. 게다가 벨라와 함께 2014년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갇혔던 벨루가 친구들이 2016년 4월, 그리고 2019년 10월에 각각 죽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벨라의 안위가 걱정될 수 없는 상황이에요.
몸 길이만 3~5미터에 달하는 생명을 넓은 바다로 돌려보내기가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롯데, 그리고 방류기술위원회에 소속된 전문가들이 각자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믿고 싶고요. 하지만 아무리 벨라가 성공적으로 바다에 돌아간다 한들, 그렇게 기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한국에 오기 전부터 거의 10년 동안을 좁은 수조에 갇혀 산 벨라의 고통이 없었던 일이 되진 않을 테니까요. 그나마 벨라는 아직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돌고래들(=최근 5년 동안만 20마리)의 억울함은 어떻게 풀어줄까요? 애초에 벨루가들을 잡아서 전시 중인 아쿠아리움이 이제 와서 벨루가들의 '행복'을 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다행히 앞으로는 수족관에 해양포유류를 새로 들여온다거나, 체험이나 공연에 동원할 수 없어요(해수부가 발표한 이 계획 덕분). 하지만 지금도 수족관에 갇혀 있는 숱한 생명들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멈춰선 안 될 거예요. 수족관뿐만 아니라 동물원에서, 실험실에서 고통받는 생명이 없는 날까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