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업은 한 번에 이뤄지지 않는, 인크리멘털 이노베이션(점진적 혁신)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조금씩 꾸준히 성장하는 게 중요하지요.”
최창식 DB하이텍 부회장은 최근 서울경제와 만나 증설 계획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가 초호황기를 맞으며 DB하이텍(000990) 역시 내년 3분기까지 생산 물량을 모두 확보한 것으로 알려질 만큼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현재 8인치 웨이퍼 공정이나 한층 진보한 12인치 웨이퍼 공정 증설이 이뤄질 것이라는 추측이 꾸준히 제기됐다. 최 부회장은 “지금도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조”라며 즉답을 피했지만 여유로운 그의 표정은 ‘다 계획이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조금씩, 꾸준히’라는 최 부회장의 말대로 그의 재임 기간 DB하이텍은 기초체력을 탄탄히 다지며 성장을 거듭했다. 삼성전자 시스템LSI 파운드리센터장으로 있던 최 부회장이 동부(현 DB)맨으로 변신한 것은 지난 2012년 3월. ‘반도체’라고 하면 누구나 D램이나 낸드플래시같은 메모리 반도체를 떠올리던 시기였다. 당시 동부그룹(현 DB그룹)은 ‘비메모리업에 헌신해 조국의 선진화에 기여한다’는 창업주의 큰그림에 따라 파운드리 사업을 벌렸지만 대규모 차입에 따른 경영난에 기술 부족으로 고전을 겪고 있었다. 2011년 매출액 5,522억 원으로 규모는 갖췄음에도 35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해 흑자 전환이 요원했다. 최창식호(號) 출범 이후 내실 다지기에 나선 DB하이텍은 그의 취임 3년째인 2014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2015년 영업이익률 두 자릿수(18.8%)에 진입한 데 이어 2019년 이후 매년 최고 실적을 다시 쓰고 있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의 올해 DB하이텍 실적 추정치 평균은 매출액 1조 1,264억 원, 영업이익 3,358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이 무려 30%에 육박한다.
DB하이텍이 그룹의 ‘돈 먹는 하마’에서 ‘캐시카우’로 환골탈태한 배경에는 최 부회장의 고집스러운 ‘점진적 혁신’ 가치가 주효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룹 차원의 대규모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에서 이익을 내고 투자를 게을리 않는 속도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최 부회장의 ‘균형 감각’이 지금의 DB하이텍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DB하이텍의 생산능력은 2014년 월간 웨이퍼 10만 장에서 2021년 13만 8,000장으로 7년간 38%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같은 기간 매출액은 두 배, 영업이익은 일곱 배 이상 뛰어올랐다. 무리한 증설 대신 끊임 없는 공정 효율화가 이뤄졌다는 얘기다.
최 부회장이 취임 10년(2022년 3월)을 맞는 내년에도 DB하이텍의 실적 신기록 행진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수주 전선에 이상이 없는 데다 웨이퍼 등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수급난도 장애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 부회장은 “당분간 반도체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이라며 “원자재 수급이 타이트하지만(여유가 없지만) 충분히 공급망 관리를 해둬 문제는 없다”고 강조했다.